대구 국우동 유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760
한자 大邱 國優洞 遺蹟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국우동 773|국우동 773-1
시대 선사/청동기,선사/철기
집필자 김병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7년 8월 1일~1998년 11월 15일 - 대구 국우동 유적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발굴 조사
원소재지 대구 국우동 유적 - 대구광역시 북구 국우동 773|773-1지도보기
성격 생활 유적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국우동에 있는 청동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의 생활 유적.

[개설]

대구 국우동 유적(大邱國優洞遺蹟)은 청동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까지의 생활 유적이다. 대구 칠곡3택지개발에 앞서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1997년 8월 1일부터 1998년 11월 15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 집자리[住居址] 8기, 고상건물지 6기, 수혈 14기, 독무덤[甕棺墓] 1기, 도랑유구[溝狀遺構] 6기, 늪지 1개소가 확인되었다.

[위치]

대구 국우동 유적은 대구광역시 북구 북쪽에 솟은 도덕산[660m]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르는 소하천인 반포천 동안의 충적지에 있다. 서쪽으로는 팔거천에 의하여 형성된 넓은 충적지가 펼쳐져 있다. 대구광역시 북구 국우동 773번지, 773-1번지에 해당한다.

[형태]

대구 국우동 유적 집자리는 자연적인 도랑의 형성과 경지정리에 따른 삭평으로 인하여 대부분 바닥만 남은 상태이다. 평면 형태는 말각장방형과 말각방형을 띠며, 내부 시설은 7호 집자리에서만 소토와 목탄이 매몰된 수혈이 확인되었다. 집자리에 부속된 창고시설로 추측되는 고상건물지는 2×1, 1×1칸의 단순한 구조이다. 독무덤은 말각장방형의 구덩이를 만든 다음 독 모양의 토기 아가리 부분을 남쪽으로 향하게 안치하고, 아가리 부분을 항아리 조각으로 막은 형태이다.

도랑유구 중 4호의 경우 장방형 내지 방형의 형태로 구획되어 있는데, 인근에 조사된 대구 동천동 취락유적, 대구 동호동 유적과 같은 경작유구의 가능성도 있다.

집자리, 도랑, 수혈 등에서 출토된 유물은 원형덧띠토기[圓形粘土帶土器], 삼각형덧띠토기[三角形粘土帶土器], 굽다리접시, 그릇 바닥, 조합쇠뿔손잡이[組合牛角形把手], 쇠뿔손잡이[牛角形把手], 가락바퀴[紡錘車] 등의 토제품과 돌화살촉[石鏃], 돌도끼[石斧] 등의 석기이다.

[현황]

대구 국우동 유적은 발굴 조사 이후 택지개발이 완료되었으며, 유적이 있던 곳은 함지근린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팔거천 유역의 충적지에서는 대구 국우동 유적 외에도 대구 동호동 유적, 대구 동천동 취락유적 등 청동기시대 마을 유적과 경작 유적이 조사되었다. 대구 국우동 유적은 청동기시대에서 초기 철기시대로 이어지는 시기의 마을 연구에 좋은 자료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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