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신공업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3704
한자 相信工業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1가 640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노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59년연표보기 - 상신공업 설립
이전 시기/일시 1968년 4월 -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 640에서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화전 595-1로 이전
해체 시기/일시 2000년연표보기 - 상신공업 해체
최초 설립지 상신공업 -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 640 지도보기
성격 섬유업체
설립자 정상용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에 있었던 섬유업체.

[개설]

상신공업은 1959년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에 생사와 견연사를 주요 품목으로 생산하기 위하여 설립된 기업이었다.

[변천]

충청남도 공주 출신인 정상용(鄭相溶)은 일본 와세다대학교 상과를 다녔던 인텔리 기업인이며, 1940년 일출제사(日出製絲)를 설립하면서 사업에 투신하였다. 1956년 일출제사의 운영 실적을 보면 운영 부수 75부, 원료견 소요량 3만 관, 구견 실적 2만 6,676관, 소요량 대비 구견비율 88.9%로 나타났다. 이 당시 대구·경북 제사 사업의 생사 생산량은 전국 36.9%를 생산함으로써 전통적인 제사공업의 중심지로서 기반을 유지하고 있었다. 정상용은 1959년 생사와 견연사를 주 생산품으로 하는 상신공업을 설립하였으며, 생산된 생사는 전량 일본에 수출하였다.

상신공업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 640에 있던 제사 공장을 1968년 4월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화전 595-1로 이전하였다. 1960년대는 잠업 증산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하여 잠업을 통하여 농가소득을 올리자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이에 힘입어 1962년 기준, 의성군의 잠업 농가 수는 7,413호, 소잠량 4,282 상자였고, 1976년 잠업 농가 수는 8,650호, 소잠량 1만 9757상자로 증가하였다. 생사의 품질 고급화를 위하여 회전족(回轉簇) 보유도 늘었다. 1985년 기준, 상신공업 제사 생산 현황은 허가 대수 392대, 가동 대수 160대였고, 직원 현황은 사무직 14명, 생산직 50명이었다. 일일 생산량은 원료잠 250㎏과 생사 100㎏이었으며, 연간 생산량은 10억 2700만 원이었고, 전량 수출하였다.

1987년 5월 상신공업 정상용 대표는 40여 년간 견직물 업체를 운영함으로써 생사 제조업을 통하여 농촌 인력의 고용증대에 이바지하였고, 꾸준한 품질 향상을 통한 수출 증대에 기여한 공로로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하였다. 또한 대한직물공업협동조합연합회 회장,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부회장을 역임하면서 섬유산업 발전에 기여하였다.

한편, 상신공업은 2000년부터 생산을 멈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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