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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항리·강림리 유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0644
한자 橋項里 江林里 遺蹟
영어공식명칭 The Ancient Site at Gyohang-ri・Gangrim-ri, Dalse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강림리 720-1
시대 선사/청동기,고대/고대,고려/고려,조선/조선,근대/근대
집필자 이창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9년 4월 27일~2013년 5월 22일 - 교항리·강림리 유적 성림 문화재 연구원이 발굴 조사
현 소재지 교항리·강림리 유적 -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강림리 720-1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성림 문화재 연구원 - 경상북도 경주시 알천남로 298[구황동 883-18]
성격 유적
면적 54,683.2㎡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강림리에 있던 청동기 시대부터 근대까지의 유적.

[위치 및 현황]

현재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교항리강림리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인 옥포 지구가 교항리·강림리 유적(橋項里·江林里遺蹟)이 위치하였던 곳이다. 조사 당시 유적의 북쪽은 유정지, 남쪽은 88 올림픽 고속 국도, 동쪽은 달성군 농업 기술 센터, 서쪽은 강림1리 마을과 경서 중학교가 조사 경계 지점이었다. 8개 조사 구역은 달성군 농업 기술 센터 서쪽의 완만한 구릉 비탈 말단부[조사 Ⅰ구역]와 유정지의 남쪽 225m 정도 이격된 거리의 독립 구릉[조사 Ⅱ구역], 조사 구역 중앙의 금계산 북쪽 구릉 비탈 말단부[조사 Ⅲ구역], 경서 중학교 동쪽 구릉 비탈 말단부[조사 Ⅳ·Ⅴ구역], 유정지 남쪽과 국도 5호선 사이[조사 Ⅵ구역], 조사 구역 북서쪽 경계 지점[조사 Ⅶ구역], 조사 Ⅲ구역 남쪽[조사 Ⅷ]에 각각 위치한다.

조사 지역은 낙동강에 의해 형성된 서부 저지대인 마갯들의 남쪽에 위치한 금학산 산록 완사면의 말단부에 있다. 조사 구역은 국도 5호선을 기준으로 남쪽에 조사 Ⅰ구역·Ⅲ구역·Ⅳ구역·Ⅴ구역·Ⅵ구역·Ⅷ구역, 북쪽에 조사 Ⅱ구역·Ⅶ구역이 분포하고 있으며, 조사 Ⅱ구역을 제외하면 해발 31~64m 정도의 북서쪽으로 뻗은 구릉에 유적이 조성되었다. 조사 지역은 조사 전 인근 주민들에 의해 논과 밭, 과수원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교항리·강림리 유적은 '대구 옥포 지구 국민 임대 주택 단지 조성 공사'로 인해 2005년에 영남 문화재 연구원에 의해 지표 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 결과 조사 구역 내에서 삼국 시대~조선 시대의 유물이 확인되어 2008년 5월 27일부터 2009년 2월 13일까지 성림 문화재 연구원에 의해 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 결과 조사 구역 내 8개 구역에서 민무늬 토기가 수습된 구상 유구와 삼국 시대의 돌덧널무덤 및 돌방무덤, 통일 신라 시대~조선 시대로 추정되는 건물 터와 건물 터 부속 시설, 시대 미상의 집석·암거 시설 및 주혈·수혈군, 조선 시대의 움무덤 등의 유구와 각종 유물들이 수습되었다. 이에 시굴 조사에서 확인된 8개 구역[조사 Ⅰ구역~Ⅷ구역]에 대해 2009년 4월 27일부터 2010년 2월 24일까지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으며, 이후 조사 Ⅵ구역을 제외하고는 공사가 시행되었다.

통일 신라 시대~고려 시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 터와 관련 유물[막새기와 등]이 출토된 조사 Ⅵ구역은 확장되는 국도 5호선 지하에 유구가 연결되고 있어 현장 조사가 일시 중지된 상태로 보존되었다. 이후 국도 5호선 확장으로 인한 우회 도로가 개설되면서 국도 5호선 일원의 추가 부지에 대한 발굴 조사가 2013년 1월 23일부터 그해 2월 7일까지 실시되었다. 조사 결과 조사 Ⅵ구역의 건물 터 부분과 남쪽 국도 5호선 추가 부지 건물 터가 동일 유구로 확인되어 동년 3월 11일부터 같은 해 5월 22일까지 추가 보완 조사가 실시되었다. 발굴 조사 결과 조사 Ⅰ구역·Ⅱ구역에서는 움무덤과 돌덧널무덤·돌방무덤이, 조사 Ⅲ구역·Ⅳ구역·Ⅴ구역·Ⅵ구역·Ⅶ구역·Ⅷ구역에서는 생활 및 건축 유적이 확인되었다.

조사Ⅰ구역에서는 조선 시대의 움무덤 15기가, 조사 Ⅱ구역에서는 움무덤 92기와 돌덧널무덤 6기·돌방무덤 7기가, 조사 Ⅲ구역에서는 건물 터 3동과 움무덤 1기·굴립주 시설 2기·주혈 23기·수혈 6기가, 조사 Ⅳ구역에서는 암거 시설 13기와 주혈 71기·수혈 7기·굴립주 시설 2기·구상 유구 1기가 확인되었다. 조사 Ⅴ구역에서는 구상 유구 3기와 주혈 16기·수혈 3기·굴립주 시설 1기가, 조사 Ⅵ구역에서는 나말 여초 건물 터가, 조사 Ⅶ구역에서는 건물 터 및 부속 시설과 집석 1기·수혈 5기·암거 시설 1기·석렬 1기·움무덤 1기가, 조사 Ⅷ구역에서는 암거 시설 3기와 석렬 1기·집석 1기·수혈 1기·주혈 8기가 확인되었다.

조사 Ⅱ구역의 움무덤은 총 92기로 출토 유물을 통해 연대가 명확한 것은 고려 시대 7기, 조선 시대 27기이다. 돌덧널무덤은 평면 형태가 [말각]장방형과 [말각]세장방형으로 규모는 길이 275~306㎝, 너비 87~194㎝ 정도이다. 출토 유물은 고려 시대의 병과 청자 대접, 청자 종지, 청동 사발, 청동 숟가락 등으로 조성 연대는 고려 시대 움무덤과 비슷한 11세기 전반에서 12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돌방무덤은 평면 형태가 [말각]장방형이며, 등고선과 평행하게 조성되었고, 규모는 길이 300㎝, 너비 180㎝ 내외이다. 3호·5호에서는 둘레돌[호석]과 베갯돌[두침석]이 확인된다. 출토 유물은 일단 굽구멍 굽다리 접시[고배]와 찍은 무늬[인화문] 병[다변화문, 종장 연속문 등], 찍은 무늬 뚜껑[종장 연속문 계열]과 같은 신라 후기 양식 및 통일 양식 토기가 주류이며, 조성 연대는 7세기 중엽에서 후엽으로 추정된다.

조사 Ⅵ구역의 유구는 중복 관계로 확인되었다. 선축 건물 터 상부에서 후축으로 조성된 회랑 터 및 기단·담장 터와 배수로 1기, 회랑 터 동편 건물 터 관련 부속 시설군 등이, 후축 유구 아래에서 선축 유구인 회랑 터 및 담장 터와 배수로 1기, 우물 1기가 확인되었다. 건물 터는 선축과 후축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중앙에 적심 건물 터를 두고, 담장과 회랑 터의 가장자리를 따라 'ㄷ' 자 또는 'ㅁ' 자 형태로 돌린 구조로 추정된다. 유물은 토도 및 자기류 69점, 기와류 98점, 금속류 3점 등 총 170점이다. 출토 유물 중 '관(官)' 자명 명문 기와 1점은 건물 터가 사지보다는 관청 시설일 가능성을 매우 높게 한다. 이로 보아 건물 터는 낙동강과 인접한 지리적 위치로 인해 조선 시대 역이나 객사와 같은 기능을 하였거나, 이 일대 고을의 중심적인 행정 기능을 관장하는 관아와 같은 시설일 가능성이 있다.

[의의와 결과]

교항리·강림리 유적은 청동기 시대부터 근대까지의 분묘와 생활 유적·건축 유적이 확인되어 달성군 지역의 생활상을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초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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