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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노폴리스 조성 부지 유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0648
한자 - 造成 敷地 遺蹟
영어공식명칭 The Ancient Site at Daegu Technopolice, Dalse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현풍읍
시대 선사/청동기,고대/고대,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이창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9년 2월 17일~2011년 9월 30일 - 테크노폴리스 조성 부지 유적 경상 문화재 연구원이 발굴 조사
현 소재지 테크노폴리스 조성 부지 유적 -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현풍읍
출토 유물 소장처 경상 문화재 연구원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738[옥봉동 801-2]
성격 유적
면적 109,934㎡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현풍읍대구 테크노폴리스 조성 부지에 있던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유적.

[위치 및 현황]

대구 테크노폴리스 조성 부지 유적은 현재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현풍읍에 위치하고 있다. 조사 지역은 비슬산에서 뻗어 내려온 남서쪽 구릉과 왕지들·금리들·유곡들과 같은 합류 선상지 등 복합적인 지형적 특성을 가진다. 조사 전에는 대규모 경지 정리와 과수원 등의 경작이 이루어지면서 원지형이 많이 훼손된 상태였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대구 테크노폴리스 조성 부지 공사로 인해 2007년 2월 2일부터 그해 6월 30일까지 대구 대학교 중앙 박물관에 의해 지표 조사[727만 1000㎡]가 실시되었다. 조사 결과 쌍계리 고분군(雙溪里古墳群)과 유물 산포지[봉리 유물 산포지·금리 유물 산포지·금리 고인돌 떼], 표본 대상 지역[대구광역시 유가읍 쌍계리·금리·용리, 현풍읍 중리, 유곡들] 등 10개 구역에 대하여 시굴 조사 및 표본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이에 유물 산포지에 대한 시굴 조사[24만 7979㎡]와 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표본 대상 지역에 대한 표본 시굴 조사[53만 3812㎡]가 경상 문화재 연구원에 의해 2009년 2월 17일부터 실시되었다. 조사 결과 유구가 확인된 4구역[봉리 유물 산포지]·5구역[금리 유물 산포지]·6구역[금리 고인돌 떼]·7구역[금리 표본 조사]·9구역[유곡들 지역]에 대해서는 2011년 9월 30일까지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이외에 금리 경작지[11구역, 1,948㎡]에서 조선 시대의 분묘가 다수 확인되어 추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고, 4구역 맞은편의 낮은 구릉에서도 유구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어 입회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 조사 결과 4구역에서는 원삼국 시대의 집자리 3동과 널무덤 14기·덧널무덤 1기·독널무덤 7기와 고려 시대의 집자리 1동, 조선 시대의 적심 건물 터 6동 및 보도 시설·담장 시설·집자리 8동·우물 1기·분묘 45기·삼가마 9기·소성 유구 4기·집석 유구 3기·수혈 30기·주혈 5개군·굴립주 건물 4동, 그리고 일제 강점기의 집구 수구 1기 등 총 160여 기가 확인되었다.

원삼국 시대의 묘역은 4구역 남동쪽 비탈에서 남서쪽 비탈[해발 55.3~64.2m]을 따라 열상으로 널무덤, 독널무덤, 덧널무덤 등이 조성되었고, 남쪽은 계단식 논과 농원 조성으로 유실된 상태였다. 원삼국 시대의 매장 유구는 장축이 동서 방향으로 모두 등고선과 평행하게 조성되어 있었고, 유구 간 중복 관계없이 일정 공간을 이격하여 확인되었다. 독널무덤은 주옹과 막음옹으로 보아 단면 삼각 점토 띠 토기 단계부터 조영되었고, 널무덤도 비슷한 시기부터 조영되어 승석 타날문 토기가 사용된 시기까지 조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독널무덤은 기반층을 굴착하여 바닥에 점질토를 깐 후 독널을 안치하였는데, 모두 합구식 독널의 형태를 띤다. 내부에서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집자리는 평면 형태에 따라 방형계와 원형계 집자리로 구분되며, 장축 방향은 남북이다. 기반층을 굴착한 후 바닥을 점질토로 3~4㎝ 정도 깔아 상면으로 사용하였다. 내부 시설은 주혈과 부뚜막이 확인되었는데, 주혈은 불규칙하게 배치되었고, 부뚜막은 바닥에 피열흔만이 잔존하여 정확한 구조를 파악하기 어렵다.

5구역에서는 원삼국 시대의 수전층이 곡부를 따라 확인되었고 조사 지역 바깥으로 이어져 있었다. 진행 방향은 북동-남서로 잔존 범위는 길이 70.3m, 잔존 너비 26m이다. 북쪽 높은 면에서 남쪽 낮은 면으로 계단식 논이 조성되었고, 폭은 4~5.5m 정도로 추정된다. 6구역에서는 민무늬 토기 시대의 생활 유구 및 매장 유구 5기와 삼국 시대의 생활 유구 5기, 조선 시대의 매장 유구 및 생활 유구 133기와 주혈군이 확인되었다. 7구역에서는 민무늬 토기 시대의 집자리 8동과 돌널무덤 5기·돌뚜껑 움무덤[석개 토광묘] 1기·수혈 11기·구 3기, 통일 신라 시대의 돌방무덤 1기와 수혈 1기, 조선 시대의 분묘 61기와 수혈 7기·구 2기·주혈 6기 등 총 106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대부분 3호 구의 서쪽에 위치하며 주축 방향은 남북이다. 평면 형태는 말각 장방형으로 등고선과 평행하게 조성되었다. 돌널무덤은 판석형과 할석형으로 구분되는데, 판석형이 4기로 비중이 높으나 바닥만 잔존해 있는 상태였다. 3호 돌널무덤은 돌널을 설치하고 그 상부를 흙으로 덮은 뒤 냇돌 3매를 놓았는데, 냇돌은 표지석의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9구역에서는 민무늬 토기 시대의 구 1기와 구획구 1기, 삼국 시대의 경작 유구[수전 1개층]가, 11구역에서는 조선 시대의 매장 유구 및 생활 유구 78기가 확인되었다.

[의의와 평가]

테크노폴리스 조성 부지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생활 유구와 분묘 유구 등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이들 유구는 달성군 유가읍현풍읍 지역의 생활상을 연구할 수 있는 기초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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