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대동여지도(2008)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1456
한자 大東輿地圖(2008)
영어공식명칭 Daedongyeojido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은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 시기/일시 1861년 - 대동여지도(2008) 제작
간행 시기/일시 1861년연표보기 - 대동여지도(2008) 간행
간행 시기/일시 1864년연표보기 - 대동여지도(2008) 재간행
문화재 지정 일시 2008년 12월 22일연표보기 - 대동여지도(2008) 보물 제850-3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대동여지도(2008) 보물 재지정
소장처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지도
저자 김정호
간행자 김정호
권책 절첩식 17권 2면[전22권]
규격 30.2㎝[세로]|20.1㎝[가로]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현풍과 대구가 표시되어 있는 1861년 김정호가 편찬·간행한 전국 지도첩.

[개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는 1861년(철종 12)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1864]가 편찬·간행하고, 1864년(고종 1)에 재간한 분첩 절첩식(分帖折帖式)의 전국 지도첩으로서, 김정호가 이전에 제작한 『청구도(靑邱圖)』의 내용을 보충하여 만든 것이다. 대동여지도는 도면의 글씨를 가능한 줄이고 기호화된 지도표[14개 항목 22종]로 표기하여 1만 1760여 개의 지명을 간결하게 수록하고 있다. 도로 표시선에 10리[3.93㎞]마다 점을 찍음으로써 실질적인 축척을 매 도면위에 나타내고 있어 지도를 읽기에 편리하게 하였다. 지도의 내용은 『청구도(靑邱圖)』와 같이 전국의 산천(山川)‚ 해도(海道)‚ 영아(營衙)‚ 읍치(邑治)‚ 성지(城趾)‚ 진보(鎭堡)‚ 역참(驛站)‚ 창고(倉庫)‚ 목소(牧所)‚ 봉수(烽燧)‚ 능침(陵寢)‚ 방리(坊里)‚ 고현(古縣)‚ 고진보(古鎭堡)‚ 고산성(古山城)‚ 도로(道路) 등이 표시되어 있다. 본 항목에서는 2008년 12월 22일에 보물 제850-3호로 지정된 서울 대학교 규장각 소장본을 이용하였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근래 김정호의 지도 중 이름이 같으면서 내용이 다른 지도첩이 새롭게 조사되었다. 국립 중앙 박물관에 소장된 필사본의 『동여(東輿)』 14첩은 1층에 큰 글씨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라고 쓰여 있고, 국립 중앙 도서관에는 필사본의 대동여지도 18첩이 남아 있기도 하다. 따라서 앞으로는 대동여지도라는 이름 앞에 '목판본 22첩', '필사본 14첩', '필사본 18첩'이란 수식어를 붙여 구분해 주어야 하는 필요성이 생겼다. 성신 여자 대학교 박물관[보물 850호]과 서울 역사 박물관[보물 850-2호]의 2본은 1861년에 간행된 것이고, 서울 대학교 규장각 소장본 1본은 1864년에 간행된 것이다. 이외에도 현재 20본 안팎이 전해지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는데, 해외에서도 발굴되고 있어서 향후 더 많아질 가능성이 있다.

[저자]

대동여지도는 김정호(金正浩)가 제작한 것이다. 김정호는 지도를 전체적인 흐름에서 이해해야지 모두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용하면 안 된다는 문구를 남겨 이용자들에게 지도의 한계를 미리 알려주고 있다.

[편찬/간행 경위]

김정호는 1834년(순조 34) 그의 첫 번째 역작인 『청구도(靑邱圖)』2책을 제작한 이후 1840년대까지 이용의 편리에 초점을 맞춰 세 번에 걸쳐서 개정판 『청구도』를 지속적으로 제작하였다. 『청구도』에 수록된 기본 정보는 1770년(영조 46)에 신경준(申景濬)이 약 4.1㎝의 20리[7.85㎞] 눈금선[방안(方眼)] 체계를 기초로 제작한 고을 지도책을, 1776년(정조 원년)에서 1787년(정조 11) 사이에 이용의 편리를 위해 재편집한 국립 중앙 도서관 소장 『해동여지도(海東輿地圖)』3책 계통과 동일하다.

1850년대에는 분량이 적어 휴대와 이동에 편리한 『청구도』의 책 형식을 버리고, 동서와 남북의 이어 보기에 초점을 맞춘 절첩식(折帖式)을 채택하여 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 필사본의 대동여지도14첩, 국립 중앙 도서관 소장 필사본의 대동여지도18첩, 필사본의 『동여도(東輿圖)』23첩을 순서대로 제작하였다. 이 중 국립 중앙 도서관 소장 필사본의 대동여지도18첩부터 산줄기, 물줄기, 해안선, 지명의 위치 등 기본 정보의 대대적인 교정이 나타나며, 필사본의 『동여도』23첩에서 절정에 달한다. 김정호는 전국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지도와 지리지를 동시에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고, 이것에 걸맞게 지도와 지리지를 동시에 제작해 왔다. 따라서 철저하게 지도적 속성이 강한 목판본의 대동여지도22첩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대동지지(大東地志)』15책의 편찬을 전제로 제작되었다.

[형태/서지]

대동여지도는 우리나라 남북을 120리[47.13㎞] 간격으로 잘라서 22층으로 나누고, 각 층은 다시 동서로 80리[31.42㎞] 간격으로 접어서 22개의 첩을 만든 목판본으로 약 16만분의 1의 축적이다. 이처럼 각층을 접어서 책자 같이 볼 수 있게 하는 절첩식으로 제작되었다. 22개의 첩을 모두 연결하면 세로 660㎝, 가로 410㎝ 정도의 대형 전도가 된다. 대구와 현풍은 제17첩 2면에 수록되어 있으며, 남북의 길이는 약 30.2㎝, 동서의 길이는 약 20.1㎝이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대동여지도는 이어 보기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지도 각 면 외곽 부분의 여백을 없앴다. 대신 1층의 가장 앞쪽에 가로와 세로 각각 80리와 120리의 눈금선표를 수록하여 축척의 기능을 대신하게 하였다. 또한 각 첩의 표지에 수록된 고을의 이름을 써주는 방식을 채택하여 찾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한편 목판본으로 제작되었기에 판각의 어려움 때문에 채색 필사본인 『동여도』보다 적은 지명이 수록되었다. 현풍은 읍치를 중심으로 동쪽의 비슬산, 유가사(瑜伽寺), 대니산, 차천(車川), 낙동강, 왕산, 쌍산(雙山), 소이산(所伊山)과 강창(江倉)을 표시하고, 현풍현 영역을 점선으로 구분하고 있다. 대구도 같은 기법으로 제작하였는데, 주변의 금호강, 팔공산, 침산, 연귀산, 성불산 등 의 산천과 범어역(凡於驛), 달성, 달천진, 금호평, 수성 등의 지명과 법이산 봉수, 화원 봉수 등이 표기되어 있다.

규장각본은 대구는 붉은색 원형 테두리에 노랑색 바탕 위에 지명을 표기하고 있으며, 현풍현은 노란색 바탕의 원형 안에 지명을 적고 있다. 흑백으로만 찍어내야 했기 때문에 현대 지도의 범례(凡例)에 해당되는 '지도표(地圖標)'에 22개의 기호가 표기되어 있다. 물줄기·산줄기는 판각에 쉽도록 단순화하였다. 대동여지도는 도로 위에 10리마다 짧은 사선을 그어 지도 평면 위의 거리가 아니라 실제로 가는 거리를 알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의의와 평가]

대동여지도는 지도의 도로에 10리[3.93㎞]마다 표시를 하여 거리를 가늠할 수 있게 하였고, 각종 범례를 사용하여 최대한 많은 지리 정보를 수록하였다. 또 목판으로 제작되어 대량 인쇄가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지도의 대중적 보급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