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3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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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書院十詠 畫巖書院 大丘 |
영어공식명칭 | Recite the Hwahamseowon in Daegu |
이칭/별칭 | 대구의 화암서원을 읊다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동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영호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01년 - 이황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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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570년 - 이황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843년 - 「서원십영 화암서원 대구」 저자 이황의 『퇴계집』 간행 |
배경 지역 | 연경서원 -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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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한시|칠언절구 |
작가 | 이황 |
조선 전기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과 동구 지묘동 사이에 있었던 연경서원을 퇴계 이황이 읊은 한시.
「서원십영 화암서원 대구(書院十詠 畫巖書院 大丘)」를 쓴 이황(李滉)[1501~1570]은 본관이 진성(眞城)이며, 자(字)는 경호(景浩)이고, 호(號)는 퇴계(退溪)이다. 시호(諡號)는 문순(文純)이다. 우리나라 성리학을 집대성하였다. 「서원십영 화암서원 대구」의 배경이 되는 연경서원(硏經書院)은 화암서원이라고도 불린다. 대구 지역에 최초로 지어진 서원으로, 이황·정구(鄭逑)[1543~1620]·정경세(鄭經世)[1563~1633] 3인과 함께 별도로 향현사(鄕賢祠)를 세워 전경창(全慶昌)[1532~1585]과 이숙량(李淑樑)[1519~1592]을 제향하였던 서원이다.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훼철되었다. 연경서원의 터는 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과 북구 연경동 사이에 있다.
「서원십영 화암서원 대구」는 칠언절구이다. ‘대구의 화암서원을 읊다’라는 의미이다.
화암형승화난성(畫巖形勝畫難成)[화암 빼어난 승경 그림으로 모두 담기 어렵고]
립원상초송륙경(立院相招誦六經)[서원 세워서 서로 불러 모아 육경 암송하였네]
종차저문명도술(從此佇聞明道術)[여기서부터 도덕 학술 밝혔다는 소문 기다리니]
가무호매득군성(可無呼寐得群醒)[뭇 몽매한 이들 불러 일깨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서원십영 화암서원 대구」는 청(青) 계열의 운목을 사용하여 지은 칠언절구이다.
「서원십영 화암서원 대구」는 연경서원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이후 「서원십영 화암서원 대구」를 차운하여 많은 시가 지어졌다. 대구 지역의 유학이 퇴계 이황을 계승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