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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운동[동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20303
한자 靑年運動[東區]
영어공식명칭 Youth Movement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서 전개된 청년운동.

[개설]

청년운동은 일제강점기 대중운동의 전위로 간주하며 전국적 대중으로 발전한 계층 운동이다. 일제강점기 대중운동에서 청년운동은 민족독립을 위한 새로운 이념의 수용과 전파의 주체로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였다. 3.1운동 이후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청년운동 단체들은 근대문명의 수용과 전파를 위한 문화운동 기관임을 자임하였다. 1920년대 중반 청년운동은 청년층의 계급적 자각을 부각시키며 대중운동에서 청년운동의 선도성을 강조하였다. 1920년대 후반 청년운동은 대중운동이 고양되고 민족협전선운동이 전개되는 상황에서 신간회 창립과 강화를 위해 노력을 경주하였다.

[동구 지역 청년운동]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동구에서는 신암청년회와 효목청년회 등이 결성되어 활동하였다. 다만, 그 설립 시기, 주도 인물, 주요 활동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신암청년회와 효목청년회 역시 일반적 청년운동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1920년대 전반기 신암청년회와 효목청년회는 문화운동의 추진 기관으로 방향을 설정하여 활동했을 가능성이 크다. 강연회, 토론회 등을 개최하여 문화운동을 자각하고 전파하는 데 집중하고, 야학 운동을 추진했을 가능성이 높다. 1925년 신암청년회와 효목청년회는 대구청년회가 발의한 달성군청년연맹의 결성에 참여하였다. 그 가운데 신암청년회의 정문환은 달성군청년연맹 집행위원으로 선정되었다. 신암청년회와 효목청년회는 달성군청년연맹이 결성될 때 채택된 강령과 결의사항을 준수하며 대중운동의 선구가 되기 위한 활동에 전념하였다. 또한 1927년 무렵 제기된 도 단위 청년동맹의 결성과 민족협동전선운동 형태로 제기된 신간회운동을 위해 활동했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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