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5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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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星州呂氏 |
영어공식명칭 | Seongju Yeo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상매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황동권 |
입향 시기/일시 | 1592년 - 성주여씨 입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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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성주 - 경상북도 성주군 |
입향지 | 성주여씨 입향지 - 대구광역시 동구 상매동 |
세거|집성지 | 성주여씨 세거지 - 대구광역시 동구 상매동 |
성씨 시조 | 여양유 |
[정의]
고려시대 삼중대광을 지낸 여양유를 시조로 하는 대구광역시 동구 상매동에 세거한 성씨.
[연원]
성주여씨는 고려시대 삼중대광을 지낸 시조 여양유(呂良裕)의 후손들이 성주(星州)에 세거하면서 여씨일문을 이루었다. 여양유의 아들 여위현(呂渭賢)은 고려시대에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냈고, 여극회(呂克誨)는 조선조에서 공조판서를 지냈으며, 5세손 여문승(呂文承)은 사복시정을 지내면서 성주여씨를 중흥시켰다.
[입향 경위]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성주여씨 일부 분파가 난을 피해 대구광역시 동구 상매동에 정착하여 세거하면서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현황]
성주여씨가 임진왜란을 피해 대구광역시 동구 상매동에 정착한 이래로 집성촌을 형성하여 거주하고 있으나, 현재는 산업화에 따른 급속한 도시화 과정을 겪으면서 집성촌으로써의 기능이 약화되었다. 대표적인 인물로 효자 능천(綾泉) 여대익(呂大翊)을 꼽을 수 있다. 여대익은 대구광역시 동구 상매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여상제(呂尙齊)의 질병에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였고, 여상제가 세상을 떠나자 영모재(永慕齋)라는 재실을 지은 뒤에 아침과 저녁으로 성묘하였다. 또한 어머니[강양이씨(江陽李氏), 이숙달(李叔達)의 딸] 봉양을 위해 영모재 옆에 만수당(萬壽堂)을 지은 뒤에 요리 기구를 설치하고 직접 요리를 하였다. 홍우전(洪禹傳)과 박문수(朴文秀)는 여대익의 효를 조정에 알려 세금과 부역을 면제받게끔 하였다.
[관련 유적]
성주여씨와 관련된 유적으로는 대구광역시 동구 능천산에 있는 영모재여대익유적비(永慕齋呂大翊遺蹟碑), 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는 영모재(永慕齋)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