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418
한자 東本院寺
이칭/별칭 동본원사 대구포교소,대구동본원사,동본원사 별원,대구동본원사 별원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16길 77[대안동 31-11]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10년연표보기 - 동본원사 설립
폐찰 시기/일시 1945년연표보기 - 동본원사 폐찰
개칭 시기/일시 6·25전쟁 당시 - 동본원사 피난민 수용소인 금강수용소로 활용
개칭 시기/일시 1965년 - 동본원사 대안성당으로 활용
폐찰 시기/일시 1995년 - 동본원사 철거 후 대안성당 신축
최초 건립지 동본원사 -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16길 77[대안동 31-11]
현 소재지 대안성당 -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16길 77[대안동 31-11]지도보기
성격 사찰

[정의]

대구광역시 중구 대안동에 있는 일본 정토진종 소속 포교소.

[개설]

일본 불교의 대표적 종파인 정토진종(淨土眞宗) 본원사(本願寺)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1543~1616] 시대에 동본원사(東本願寺)와 서본원사(西本願寺)로 분리되었다. 1873년 동본원사는 ‘대곡파(大谷派)’로, 서본원사는 ‘본파(本派)’ 또는 ‘본원사파(本願寺派)’로 불렸다. 일본 불교계는 식민지 개척 사업의 일환으로 조선 포교에 나섰는데, 진종 대곡파뿐만 아니라 진종 본원사파 역시 마찬가지였다.

[건립 경위 및 변천]

서본원사는 1904년 4월경 누노카와 히로아키[布川宏哲]를 대구에 파견하여 포교 활동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누노카와 히로아키는 대구의 일본인 거류민과 조선의 민중뿐 아니라 감옥에 투옥된 죄인을 상대로도 포교하였다. 교세가 확장되자 1909년 12월 경상감영 내 전옥서(典獄署)[중구 대안동 31]를 허물고 감옥이 있던 자리에 서본원사 본당과 부속 건물을 지었다. 공식 명칭은 본파(本派) 출장소(出張所)[서본원사 대구출장소]였다. 건축비 4,400엔 가운데 본파가 850엔을 보조하였고, 3,550엔은 대구·부산·경산·왜관·김천 등지의 본파 출장소 소속 신도와 유지들이 기부하였다.

서본원사가 건립되고 1년 뒤인 1910년 10월 교토[京都] 동본원사는 서본원사 맞은편에 동본원사 대구포교소를 설치하였다. 동본원사 대구포교소는 1929년 9월 ‘동본원사 별원(東本願寺別院)’으로 승격되었다. 일본 기후현[岐阜県] 오가키시[大垣市] 정각사(浄覚寺)의 주지 다카기[高木] 등이 동본원사 별원에 거주하면서 신도가 급증하였으나 당시 신도 수는 서본원사의 절반 규모였다고 한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동본원사6·25전쟁 당시에는 피난민들이 생활하는 금강수용소로 활용되었다. 1965년 천주교 대구대교구 대안성당동본원사를 매입하여 성당으로 활용하다가 1995년 철거하고 지금의 대안성당을 새로 지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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