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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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德山城 |
이칭/별칭 | 앞산산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산227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려/고려 |
집필자 | 민선례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8년 5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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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대덕산성 -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산224|산226|산227![]() |
성격 | 산성 |
양식 | 포곡식 |
크기(높이,길이,둘레) | 약 3㎞[길이]|1.5~2m[잔존 높이] |
관리자 | 대구광역시 남구청 |
문화재 지정 번호 | 대구광역시 기념물 |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대덕산에 있는 삼국시대 후기부터 통일신라 시기에 축조된 산성.
대덕산성(大德山城)은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대덕산에 있는 포곡식 산성이다. 정확한 축조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성곽의 위치와 규모, 성 내부에서 출토되는 토기편과 기와편 등으로 보아 삼국시대 후기 또는 통일신라 때에 축조되었으며 고려시대까지 사용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위치와 지형으로 볼 때 방어의 기능보다는 도피의 기능이 강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덕산을 앞산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대덕산성을 ‘앞산산성’이라고도 부른다.
927년(고려 태조10) 태조 왕건이 공산전투(公山戰鬪)에서 후백제 견훤에게 패하여 대덕산 은적사(隱寂寺)에 머물렀다는 이야기로 보아 대덕산성은 나말여초(羅末麗初)에 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1832년 편찬된 『대구읍지』의 「고적조」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통하여 볼 때 대덕산성은 조선시대에는 사용되지 않았고, 성의 둘레는 3,051척[약 925m]이었음을 알 수 있다.
대덕산성은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산224번지, 산226번지, 산227번지 일대의 대덕산(大德山)[580m] 북쪽 정상에서 ‘안지랭이’ 계곡을 포함한 곳에 있다. 대덕산은 대구분지의 남쪽에 있으며, 산의 정상에서는 북쪽으로 펼쳐진 대구분지 전역을 내려다볼 수 있다. 대구광역시 남구의 대명동과 봉덕동, 수성구 파동과 달서구의 송현동 일대에 걸쳐 있는 산으로 앞산이라고도 불린다. 동남쪽으로는 산성산과 비슬산으로 이어지고 서북쪽은 멀리 낙동강과 금호강의 충적평야와 접한다.
대덕산성은 안지랭이 계곡을 끼고 좌우 능선을 감싼 형태로 축조된 포곡식산성(包谷式山城)으로 성곽의 길이는 3㎞ 정도로 비교적 규모가 큰 대형산성이다. 성벽은 대부분 가파른 자연 암반을 최대한 이용하였으며, 산의 능선과 비탈 부근의 접근이 용이한 지형에는 자연석을 이용하여 성벽을 축조하였다. 성벽의 잔존 높이는 1.5~2m 정도이며, 대덕산 정상과 양 능선을 따라 일부 확인된다.
대덕산성은 망대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최정상의 구릉에 현재 송신탑이 세워져 있고, 다른 능선으로 이어지는 구릉은 헬기장 또는 바닥에 암괴가 그대로 노출되어 성 내부에 활용 가능한 공간은 많지 않다. 또한 성 안쪽의 계곡도 급경사면이어서 건물지가 조성되기 어려운 지형으로 현재 확인되는 유일한 건물지는 계곡 끝자락과 마주하는 곳에 있는 안일암(安逸庵)이다. 1988년 5월 30일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었다. 대덕산성은 거의 훼손되어 대덕산 정상과 양 능선을 따라 부분적으로 성벽이 확인된다.
대덕산성은 대구분지 외곽에 있는 산성으로 삼국시대 후기 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이용된 피신하기 위한 산성으로 추정된다. 대구분지 내에 있는 삼국시대 달성토성과 함께 삼국시대 성곽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