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0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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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山谷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김석배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2년 - 「고산골」 국학자료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Ⅱ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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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9년 - 「고산골」 대구광역시에서 발행한 『대구지명유래총람』에 수록 |
관련 지명 | 고산골 -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 |
성격 |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임금|신령 |
모티프 유형 | 지명유래담 |
[정의]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에 있는 고산골과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고산골」은 2002년 국학자료원에서 펴낸 『한국구비문학』Ⅱ와 2009년 대구광역시에서 펴낸 『대구지명유래총람』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에 고산골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신라시대에 한 임금이 왕자가 없어서 걱정하던 중에 꿈에 신령이 나타나 고산골에서 불공을 드리면 왕자를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임금은 신령의 말에 따라 ‘고산사(高山寺)’라는 절을 짓고 100일 동안 불공을 드려 왕자 두 명을 얻었다. 임금이 기뻐하여 전국의 죄수를 석방하고 큰 잔치를 열었으며, 기념으로 고산사에 삼층석탑을 세웠다. 고산사에는 자식 없는 부녀자들의 백일기도 행렬이 끊어지지 않았다. ‘고산골’은 고산사가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뒷날 임진왜란(壬辰倭亂)[1592] 때 왜병이 고산사를 무너뜨리고 석탑 속에 있던 보물을 훔치려고 하다가 갑자기 벼락이 떨어지는 바람에 왜병은 즉사하고 탑의 상층부 일부가 부서졌다고 한다. 고산사 자리에는 이후 법장사(法藏寺)를 다시 지었다.
고산골에는 ‘탑동네’라고 불리는 곳이 있는데, 옛날 거기에 돌탑이 있어서라고 한다.
[모티프 분석]
「고산골」는 지명유래담을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