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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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梨泉洞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대구광역시 남구 이천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석배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2년 - 「이천동」 국학자료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Ⅱ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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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9년 - 「이천동」 대구광역시에서 발행한 『대구지명유래총람』에 수록 |
관련 지명 | 이천동 - 대구광역시 남구 이천동 |
성격 |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이서 |
모티프 유형 | 지명 유래담 |
[정의]
대구광역시 남구 이천동과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이야기.
[개설]
「이천동」은 대구광역시 남구 이천동(梨泉洞)과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지명 유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이천동」은 2002년 국학자료원에서 펴낸 『한국구비문학』Ⅱ와 2009년 대구광역시에서 펴낸 『대구지명유래총람』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대구광역시 남구 이천동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이천동 일대에는 원래 배나무가 많았으며, 맑은 샘물이 솟았다고 한다. 그래서 ‘배나무가 있는 샘’이라는 뜻에서 동네를 ‘이천동’으로 불렀다고 한다. 1776년에 대구판관(大邱判官)으로 부임한 이서(李漵)가 1778년 사재(私財)를 털어 신천(新川)을 만들기 전까지는 수도산(水道山) 동쪽에서 건들바위 일대까지 배나무 샘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미나리꽝[미나리를 심는 논]을 만들어 대구 시민들에게 신선한 미나리를 공급하였다고 한다.
일설에는 강물이 흘러가던 곳에 배를 묶어 두는 나루터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모티프 분석]
「이천동」은 지명 유래담을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