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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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達西區] |
영어공식명칭 | Mojjineun Norae|Farmers’ Song|Rice Transplantation Song |
이칭/별칭 | 모찌는 소리,모찌기소리,모찌기노래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대구광역시 서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서은 |
채록 시기/일시 | 1987년 5월 11일~5월 16일 - 「모 찌는 노래」[달서구]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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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록 시기/일시 | 1987년 6월 10일 - 「모 찌는 노래」[달서구] 채록 |
채록 시기/일시 | 1987년 7월 20일 - 「모 찌는 노래」[달서구] 채록 |
채록지 | 「모 찌는 노래」[달서구] 채록지 -
대구광역시 달서구 호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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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창권역 | 「모 찌는 노래」[달서구] 가창지 - 대구광역시 달서구 일대 |
성격 | 민요|노동요 |
기능 구분 | 농업노동요 |
대구광역시 달서구 일대에서 모찌기를 하면서 부르던 노동요.
「모 찌는 노래」[달서구]는 모를 심기 전 모판에서 모를 쪄 낼 때 부르던 농업노동요이다. 모찌기는 계속 쪼그리고 앉아서 하는 고된 노동이기 때문에 「모찌는 노래」와 같은 노동요를 부르며 노동의 효율을 올렸다. 모찌는 소리, 모찌기소리, 모찌기노래 등으로 불린다.
1987년 영남대민족문화연구소에서 펴낸 『민속예술』에 따르면, 1987년 5월 11일~1987년 5월 16일. 1987년 6월 10일, 1987년 7월 20일 세 차례에 걸쳐서 대구직할시 서구 성서3동의 파산마을·신당마을·갈산마을에서 「모 찌는 노래」[달서구] 세 곡의 가사를 채록하였다. 이 세 마을은 현재 대구광역시 달서구의 호산동·신당동·갈산동에 해당한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앞소리를 하면 모두가 뒷소리를 하는 선후창으로 부르기도 하고, 두 패로 나누어 교창으로 부르기도 한다. 즉 선후창 또는 교창의 형식으로 가창한다.
성서3동에서 채록된 세 곡의 「모 찌는 노래」[달서구]는 시작하는 부분에 ‘들어내자/ 들어내자/ 이 모판을 드러내자’라는 사설을 공유하는데, 이는 경상북도 지역의 「모찌는 노래」에서도 흔히 보인다.
파산마을의 모찌는 노래 가사는 다음과 같다. “들어내자/ 들어내자/ 이 모판을 들어내자// 이여내자/ 이여내자/ 이 모판을 이여내자// 잡아내자/ 잡아내자/ 저승처사 잡아내자// 이여내자/ 이여내자/ 이만 석을 이여내자.”
신당마을의 모찌는 노래 가사이다. “들어내세/ 들어내세/ 이 모판을 들어내세// 여히내자/ 여히내자/ 이 모판을 여희내자// 들어내자/ 들어내자/ 이 모판을 들어내자// 여희내자/ 여희내자/ 이 모판을 여희내자.”
마지막으로, 갈산마을의 모찌는 노래 가사이다. “들어내자/ 들어내자/ 이 모자리를 드러내자// 이워내자/ 이워내자/ 이 모자리를 이워내자// 드러내자/ 드러내자/ 이 모자리를 드러내자// 저승처자 강림도령/ 이 모자리를 잡아가자// 이승처사 이명수아/ 이 모자리를 드러내자.”
현재는 직접 모를 쪄 내는 일이 없다. 모판 상자에 모를 길러서 기계로 옮기면 기계가 모를 심게 된다. 모를 찌는 행위가 없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모 찌는 노래」[달서구]도 현장에서 사라졌고, 농요를 보존하는 모임 등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을 뿐이다.
「모 찌는 노래」[달서구]는 직접 농사일을 하며 「모찌는 노래」를 불렀던 지역의 농군들이 구연한 소리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