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380 |
---|---|
한자 | 趙國賓 |
영어공식명칭 | Jo Gukbin |
이칭/별칭 | 경관(景觀),설죽(雪竹)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충희 |
출생 시기/일시 | 1570년 - 조국빈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606년 - 조국빈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06년 - 조국빈 예문관검열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618년 - 조국빈 거제도 유배 |
활동 시기/일시 | 1624년 - 조국빈 대구부사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32년 - 조국빈 형조참의 역임 |
몰년 시기/일시 | 1642년 - 조국빈 사망 |
출생지 | 금석리 -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금석리 |
부임|활동지 | 경상감영 - 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길 99[포정동 21] |
유배|이배지 | 거제도 - 경상남도 거제시 |
묘소|단소 | 조국빈 묘소 -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금석리 |
성격 | 문관 |
성별 | 남성 |
본관 | 풍양(豊壤) |
대표 관직 | 대구부사|형조참의 |
[정의]
조선 후기 대구부사를 역임한 문관.
[개설]
조국빈(趙國賓)[1570~1642]은 본관은 풍양(豊壤)이고, 자는 경관(景觀), 호는 설죽(雪竹)이다. 광해군 때 인목대비의 서궁 유폐를 반대하다가 유배 갔는데, 인조반정 후 재임용되어 1624년(인조 2)에 대구부사로 부임하였다. 대구부사 재임 중에 대구 향교의 명륜당을 건립하였고, 금호강 강변에 있던 소유정을 방문하여 시를 남겼다.
[가계]
조국빈(趙國賓)[1570~1642]의 본관은 풍양(豊壤)이며, 자는 경관(景觀), 호는 설죽(雪竹)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승종(趙承宗)이고, 할아버지는 조근(趙近)이다. 아버지는 참봉 조유백(趙惟白)이고, 어머니는 가평호씨(加平胡氏)이다. 부인은 정몽선(鄭夢先)의 딸 초계정씨(草溪鄭氏)이다.
[활동 사항]
조국빈은 1570년(선조 3) 지금의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금석리에서 태어났다. 1606년 진사시에 합격한 뒤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1608년 가주서(假注書)가 되었으며 1610년(광해군 2)에는 황해도사를 역임하였다. 1615년부터 정언·지평 등 언관으로 활약하였는데, 1618년에 인목대비의 서궁(西宮) 유폐를 반대하다가 거제도로 유배되었다. 인조반정 이후에 다시 관직에 나아가 1624년(인조 2)에 대구부사에 부임하였다.
조국빈은 대구부사 재임 중에 대구향교의 명륜당(明倫堂)을 건립하였다. 대구향교는 1398년(태조 7) 교동에 처음 건립되었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599년에 달성(達城)[지금의 달성공원]으로 이전하였다. 그 후 1605년에 다시 교동으로 옮겼지만 명륜당은 건립되지 못하였는데, 1625년에 조국빈이 대구부사로 재임하면서 명륜당을 완공하였다.
조국빈은 1632년 형조참의가 되었으나 벼슬에서 물러나 은거하다가 1642년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조국빈은 대구부사 재임 중에 북구 검단동의 금호강 변에 있던 소유정을 방문하여 5수의 칠언율시를 지었는데, 그 시가 『소유정 제영록(小有亭題詠錄)』에 기록되어 전한다.
[묘소]
조국빈의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금석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