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82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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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徐丙騏 |
영어공식명칭 | Seo Byeonggi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김성범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화가.
[활동 사항]
서병기(徐丙騏)[?~1993]는 지금의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1929년에 도쿄 제국미술학교에 입학하지만 형의 죽음으로 귀국하게 되어 졸업을 하지 못하였다.
서병기는 1930년대 초에 대구 지역 미술 단체인 향토회(鄕土會)에서 활동하게 된다. 향토회는 1930년대의 조선 향토색론을 충실히 반영한 집단이라는 점에서 미술사적으로 커다란 의의를 지닌 모임이다. 동시에 영과회의 진보적인 미술인을 제외하였다는 점에서 프롤레타리아 미술 등 다양한 미술 세계를 포괄할 수 없었다는 한계를 가진다.
1933년에 서병기는 향토회 내부에서 향토회 양화연구소(洋畵硏究所)를 설립하여 향토회 회원들을 주축으로 소묘 연구와 후진 양성에 주력하였다. 이후 1933년에 향토회 제5회전에 출품하였으며 1936년 7월에는 남조선미술전람회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으며 스스로도 출품하였다.
서병기는 1962년부터 작품 활동을 재개하였으며 1963년에는 경북미술협회의 부이사장을 역임하였고 1979년 일본에서 마지막 개인전을 열었다.
서병기는 1993년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서병기의 작품 「무제」[1981], 「가을산」[1981], 「호수풍경」[1988]이 대구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