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12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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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順恒[達城郡] |
영어공식명칭 | Gang Sunhang |
이칭/별칭 | 태겸(泰兼),가은(稼隱)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홍수 |
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태겸(泰兼), 호는 가은(稼隱)이다.
강순항(姜順恒)[1745~1830]은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50여 년간 어버이를 지극정성으로 봉양하여 고을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한 하늘이 낸 효자이다. 일곱 살 때는 이웃의 잔치에 갔다가 과일을 가슴에 품고 와서 어버이에게 드렸다. 비록 집안이 가난해 글을 배우지는 못하였지만 어버이를 모시고 식사할 때는 어른보다 먼저 수저를 들지 않는 등 품행이 단정하였다. 아버지가 여러 해 동안 병석에 누워 있어 백방으로 약을 써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해 겨울 참외를 먹고자 하는 아버지를 위해 사방을 헤매다가 우연히 참외를 구해서 가져다주었다. 또 이듬해 겨울 잉어를 먹고 싶어 하는 아버지를 위해 못으로 나가 얼음을 깼더니 큰 잉어 한 마리가 얼음장 위로 뛰어올라 그것을 가져다 푹 고아 주었더니 병세에 차도가 있었다. 어느 날 하루는 나무를 해 저자에 가서 팔아 쇠고기를 사 가지고 돌아오던 길에 독수리에게 쇠고기를 빼앗겼다. 그런데 집에 와서 보니 부인이 쇠고기 국을 끓이고 있었다. 커다란 독수리 한 마리가 쇠고기 뭉치를 떨어뜨리고 간 것이었다. 부모가 죽자 가례(家禮)에 따라 삼년상을 지내며 시묘(侍墓)를 사는데 밤에는 호랑이가 와서 호위해 주었으며, 상중(喪中)에 지키는 모든 예절이 예법에 어긋나는 일이 없었기에 사람들이 모두 칭송하였다.
1816년(순조 16) 경상도 관찰사 이존수(李存秀)의 건의에 의해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임명되는 동시에 효자로 포상을 받았다. 이어서 1830년(순조 30)에는 행동지중추부사(行同知中樞府事)에 임명되고 삼대(三代)에 증직(贈職)이 내려졌다. 정려(旌閭) 현판의 ‘효자 숭정대부 행 동지중추부사 강순항의 정려 숭정기원후사을미년 11월[孝子崇政大夫行同知中樞副事姜順恒之閣崇禎紀元後四乙未十一月]’이라는 내용에 따르면 1835년(헌종 1)에 정려가 내려졌다.
강순항의 효행과 이적(異蹟)을 기리는 효자 강순항 정려각(孝子姜順恒旌閭閣)이 대구광역시 동구 평광동 1180-5번지에 위치해 있다. 2000년 2월 29일 대구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35호로 지정되었다. 효자 강순항 정려각은 정면 한 칸, 측면 한 칸의 맞배지붕으로 건립되었고, 그 정면에는 가로 110㎝, 세로 40㎝의 현판에 후손들의 기문(記文) 네 편이 기록되어 있다. 본래의 비석은 없어졌으며, 현재 효자 강순항 정려각 좌측에 있는 비석은 1991년 당시 경북 대학교 대학원장 서수생(徐首生)이 지어서 다시 세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