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2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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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打作-[北區] |
영어공식명칭 | Tajak-nOrae|Threshing Song |
이칭/별칭 | 「보리타작소리」,「도리깨질소리」,「옹헤야」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서은 |
채록 시기/일시 | 1987년 6월 6일 - 「타작노래」[북구] 대구직할시 북구 칠곡1동 관음마을에서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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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록지 | 「타작노래」[북구] 채록 추정지 -
대구광역시 북구 관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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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창권역 | 대구광역시 - 대구광역시 |
성격 | 민요 |
기능 구분 | 농업노동요 |
형식 구분 | 선후창 |
가창자/시연자 | 이태원|최종택 |
대구광역시에서 전승되는 농업노동요.
「타작노래」[북구]는 보리를 깔아 놓고 보리 이삭을 터는 작업 때 부르는 농업노동요이다. 보통 보리 타작에는 ‘도리깨’라는 농기구가 사용되는데 소리 없이 도리깨를 내려치면 일손이 맞지 않기 때문에 소리를 하며 리듬을 맞춘다. 목도리깨꾼이 메기는소리를 하면 종도리깨꾼이 받는소리를 한다. 「보리타작소리」, 「도리깨질소리」, 「옹헤야」라고도 일컫는다.
1987년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에서 발간된 『민속예술』에 따르면, 1987년 6월 6일 대구직할시 북구 칠곡1동 관음마을에서 가창자 이태원과 최종택으로부터 「타작노래」[북구]가 채록되었다. 다만, 당시 채록한 장소에 관한 기록이 애매한 점이 있어 정확한 현재 위치는 특정하기 어렵고 현재의 대구광역시 북구 관음동 지역일 것으로 추정된다.
「타작노래」[북구]는 목도리깨꾼이 소리를 메기고 여러 사람의 종도리깨꾼이 받는 선후창 형식으로 부른다.
관음마을에서 채록된 「타작노래」[남구]는 “옹헤야"가 후렴으로 나오는 유형이다. 대구 지역의 타작 노래에는 이러한 유형이 흔히 발견된다. 다만, 후렴인 “옹헤야”를 다른 마을과 달리 “오~옹헤야”로 부르는 특징적인 가락을 갖고 있다. 사설은 다음과 같다.
“오~ 옹헤야 오~ 옹헤야/ 오~ 옹헤야 오~ 옹헤야/ 잘도 한다 오~ 옹헤야/ 정월이라 십오일에 오~ 옹헤야/ 망월하는 소현들아 오~ 옹헤야/ 훈풍도 오~ 옹헤야/ 보련이와 오~ 옹헤야/ 부모 봉양 오~ 옹헤야/ 생각하라 오~ 옹헤야/ 신체발부 오~ 옹헤야/ 사계절은 오~ 옹헤야/ 부모님께 오~ 옹헤야/ 태어나니 오~ 옹헤야/ 태산 같이 오~ 옹헤야/ 깊은 넋과 오~ 옹헤야/ 하해 같이 오~ 옹헤야/ 깊은 정을 오~ 옹헤야/ 어이 햐야 오~ 옹헤야/ 잊어리요 오~ 옹헤야/ 천만시를 오~ 옹헤야/ 믿었더니 오~ 옹헤야/ 봉래산에 오~ 옹헤야/ 불사약과 오~ 옹헤야/ 불로초를 오~ 옹헤야 .”
「타작노래」[북구]는 현재 타작 자체가 기계화되면서 노동 현장에서 불리는 일이 없어졌다. 다만, 대구광역시에서는 농요보존회를 중심으로 공연화되어 전승되고 있다.
대구광역시에서 전승되는 「타작노래」[북구]는 대구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옹헤야」류의 소리이지만, 다른 지역과 달리 “오~ 옹헤야”로 변화한 후렴구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