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0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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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1952年 慶北道議員 選擧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1952년 5월 10일 대구에서 도의회 의원을 선출하기 위하여 실시되었던 지방선거.
대구의 경북도의원 선거는 1949년 7월 4일에 공포된 법률 제32호 「지방자치법」을 근거로 하고 있다. 「지방자치법」은 1949년 12월 15일에 개정되었다. 대구의 경북도의원 선거는 1950년 12월에 「지방자치법」에 따라 실시될 예정이었으나 6·25전쟁으로 연기되었다.
1952년 경북도의원 선거(一九五二年慶北道議員選擧)는 대한민국 최초의 지방선거로 1952년 4월 25일 실시된 시·읍·면의회 선거에 이어 1952년 5월 10일 실시되었다. 경북도의회 의원의 정수는 61명이었다. 그 가운데 대구 지역의 선출 인원은 10% 정도인 6명이었다. 갑, 을, 병 등 3개 구에서 각 2명을 선출하는 1952년 경북도의원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는 모두 28명이었다.
후보자의 정당 소속은 무소속이 21명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국민회 3명, 자유당 2명, 조민당 1명, 의용노인대 1명의 순이었는데 후보자 중 11명이 등록 취소하여 실제 입후보자는 17명이었다. 1952년 경북도의원 선거는 1952년 5월 10일 오전 7시부터 시작되었다. 대구 지역 유권자 17만 357명 중에서 56%인 9만 5200여 명이 투표에 참여하였다.
1952년 경북도의원 선거에서는 대구 지역 선출 인원 6명 모두 무소속 입후보자가 당선되는 결과를 낳았다. 선거구로 보면, 갑구에 송두환(宋斗煥)[1만 1692표]과 서인수(徐麟洙)[8,529표], 제2구에 서강준(徐康俊)[9,730표]과 배영덕(裵永悳)[8,128표] 제3구에 김재권(金在權)[6,372표]과 조병관(曺秉琯)[6,268표]이었다.
1952년 경북도의원 선거는 대한민국 최초로 제정된 「지방자치법」에 따라 실시된 최초의 지방의회 선거로 제도적으로는 민주주의가 확대되었다는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