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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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順興安氏 |
영어공식명칭 | Sunheung An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내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황동권 |
입향 시기/일시 | 159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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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순흥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
입향지 | 순흥안씨 입향지 -
대구광역시 동구 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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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집성지 | 순흥안씨 세거지 - 대구광역시 동구 내동 |
성씨 시조 | 안자미 |
입향 시조 | 안황 |
고려 신종 때 흥위위 보승별장을 역임한 안자미를 시조로 하고 추산 안황을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 동구 내동에 세거한 성씨.
순흥안씨는 고려 신종(神宗) 때 흥위위 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을 역임하고 신호위 상호군(神虎衛上護軍)에 추봉된 시조 안자미(安子美)가 순흥[지금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에 정착하여 세거하면서 안씨일문을 이루었다. 이후 증손 안향(安珦)이 크게 현달하여 생활 근거지가 개성으로 나뉘어져 살게 되었다. 안자미의 삼형제 중 첫째인 안영유(安永儒)는 추밀공파, 둘째인 안영린(安永麟)은 별장공파, 셋째인 안영화(安永和)는 교서공파의 파조가 되고, 다시 안영유의 후손에 14개파, 안영린의 후손에 4개파, 안영화의 후손에 4개파로 분파되어 번성하였다. 대구광역시 동구 내동의 순흥안씨는 안영유의 추밀공파 후손이다.
고려 말의 대학자 안향(安珦)의 후손인 추산(秋山) 안황(安璜)이 임진왜란을 피해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대구광역시 동구 내동(內洞)에 정착하여 세거하면서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순흥안씨는 추산(秋山) 안황(安璜)이 임진왜란을 피해 대구광역시 동구 내동에 정착한 이래로 집성촌을 형성하면서 거주하고 있으나, 현재는 산업화에 따른 급속한 도시화의 과정에서 거의 해체되어 집성촌으로서 기능이 약화되었다.
순흥안씨와 관련된 유적으로는 대구광역시 동구 내동에 추산공유적 안정자비(秋山公遺蹟安亭子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