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의료원 직권중재 철폐투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531
한자 嶺南大醫療院 職權仲裁 撤廢鬪爭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대구광역시 남구 현충로 170[대명동 317-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정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95년 7월 26일연표보기 - 영남대의료원 직권중재 철폐투쟁 시작
종결 시기/일시 1995년 9월 15일연표보기 - 영남대의료원 직권중재 철폐투쟁 종료
발생|시작 장소 영남대의료원 - 대구광역시 남구 현충로 170[대명동 317-1]지도보기
성격 노동운동
관련 인물/단체 박용선|박문진

[정의]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영남대의료원에서 1995년 소속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인력 문제 해결, 임금인상과 공익사업장에 대한 직권중재제도 철폐를 요구하며 벌인 파업 투쟁.

[개설]

영남대의료원 노동조합은 1987년 설립되어 1995년 현재 820명의 조합원이 소속되어 있었다. 노동조합은 1995년 5월 2일부터 7월 6일까지 8차례 임금인상 및 단체협상 갱신 교섭을 병원 측에 요청하였으나 결렬되었다. 이에 찬성 70%라는 조합원의 쟁의행위 결의 속에 1995년 7월 26일부터 중환자실, 응급실, 신생아실 등을 제외한 업무를 중단하면서 파업에 돌입하였다.

1995년 8월 4일 대구지방노동위원회에서 노사 양측에 직권중재를 통지하자 노조는 ‘직권중재 철폐와 노조사수’를 결의하였다. 이후 1995년 8월 8일 조합장 박문진 등 간부 5명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농성장에서 294명의 조합원이 연행되기도 하였다. 1995년 9월 15일 노사합의 후 정상 업무가 개시되었다.

[역사적 배경]

영남대의료원 노동조합[조합장 박문진]은 영남대학교병원[병원장 이현우]과 임금인상 및 단체협상 갱신 교섭 과정에서 노조 측이 교섭 대상 외의 ‘전국병원노조연합’ 공동요구안인 징계위원히 구성 시 노사 동수 구성 등의 4개 조항을 우선 교섭 사항으로 주장하여 실질적인 교섭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이 상태에서 쟁의 행위가 직권중재에 회부되자 영남대의료원 노동조합이 이에 반발하여 파업에 돌입하였다.

[경과]

영남대의료원 직권중재 철폐투쟁은 1995년 7월 26일 파업에 돌입하면 시작되어 9월 15일 종료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 박문진 노동조합장 등 5명이 구속되면서, 1996년 3월 21일 영남대의료원 노조탄압 저지를 위한 대구 지역 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다. 대책위원회는 해고노동자 복직, 조합비 가압류 해체를 주장하며 영남대의료원 정문에서 항의 집회를 진행하였디.

[결과]

영남대의료원 직권중재 철폐투쟁은 1995년 9월 6일 노사실무대표회의에서 노동조합장 박문진 등 11명의 징계를 수용하고 기본급 7% 인상 등을 합의하면서 9월 15일 노조원들이 업무에 복귀하면서 일단락되었다.

[의의와 평가]

영남대의료원 직권중재 철폐투쟁은 의료계와 공익사업장의 쟁의에 대한 직권중재제도가 가진 반노동자적 부당성을 폭로하고 항거함으로써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 노동운동에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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