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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 남아 있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추모하기 위하여 지은 집 재실(齋室)은 조상을 추모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묘소 근처나 강학지, 유허지 등에 지은 집을 이르는 말이다. 재실의 ‘재(齋)’는 ‘제계(齊戒)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을 맑게 하여 선조를 생각하고 추모하는 것을 뜻한다. 묘소에 재실을 둔 것은 진한(秦漢) 때에 처음으로 시작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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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성동에 있는 채선수를 추모하는 재실. 성산재(城山齋)는 조선 후기 학자이자 의병장 채선수(蔡先修)[1568~1633]를 기리기 위하여 인천채씨(利川蔡氏) 문중에서 건립한 묘소 재실이다. ‘성산재’란 고산토성 아래에 지은 집이란 의미로 붙인 당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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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성동에 있는 조선시대 서당. 고산서당은 원래 서원이 있던 자리에 있는데, 정확한 최초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과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1563~1633]가 강학하였다는 데서 1500년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명종 때에 재실을 짓고 재(齋)는 ‘고산(孤山)’, 문(門)은 ‘구도(求道)’로 한 퇴계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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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서원. 덕산서원(德山書院)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절개를 지켰던 남은(南隱) 서섭(徐涉)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서원이다. 서섭은 달성서씨 판서공파(判書公派)의 파조(派組)로 세종 때 대과에 급제하였다. 문종을 거쳐 단종 때에 이르러 자헌대부(資憲大夫) 이조판서(吏曹判書)까지 지냈다. 1924년 서섭이 살던 집 천장에서 발견된 집필 뭉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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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유학자인 손린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서원. 봉산서원(鳳山書院)은 문탄(聞灘) 손린(孫遴)[1566~1628]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손린은 16~17세기 대구 유학 부흥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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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 오천서원(梧川書院)은 1744년(영조 20)에 양희지(楊凞止)[1439~1504]를 기리기 위하여 창건된 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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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 청호서원(靑湖書院)은 조선 후기 연경서원(硏經書院)과 영모당(永慕堂)에서 강학한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1553~1634]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서원이다. 손처눌은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과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이다. 1755년(영조 31)에 문인인 사월당(沙月堂) 류시번(柳時藩)을, 1775년(영조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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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노변동에 있는 조선 전기 경산현의 사직단. 노변동사직단(盧邊洞社稷檀)은 문헌상으로 확인되던 조선시대 사직단이 1999년 2월 1일부터 2000년 8월 28일까지 이루어진 조사를 통하여 매우 양호한 상태로 발굴된 것이다. 건립 시기는 조선 전기로 추정된다. 2006년 4월 20일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16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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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하시찬을 제향하는 개항기 사당. 경덕사(景德祠)는 조선 영조·정조 때 학자인 열암(悅菴) 하시찬(夏時贊)[1750~1828]을 제향하는 곳이다. 하시찬은 심재(心齋) 송환기(宋煥箕)와 경호(鏡湖) 이의조(李宜朝)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심성의 오묘함과 경학(經學)과 예학(禮學)의 요결을 터득하였다. 1789년(정조 13) 39세 때 독무암서(獨茂巖棲)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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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 있는 조선 전기 학자 전경창을 기리는 재실. 계동정사(溪東精舍)는 대구 출신의 성리학자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이 1565년(명종 20)에 건립하고, 1566년부터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 태암(苔巖) 이주(李輈), 엄약재(儼若齋) 전춘년(全春年)을 교육하던 강학소이다. 1566년에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과 괴헌(槐軒) 곽재겸(郭再謙)이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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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가천동에 있는 아산장씨 덕봉공파 문중 재실. 계술재(繼述齋)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가천동에 있는 아산장씨(牙山蔣氏) 덕봉공파(德峰公派) 문중 재실이다. 대구 지역의 아산장씨는 대구 고산[현 가천동] 입향조 장흥부(蔣興膚)의 증손자인 덕봉(德峰) 장자원(蔣自元) 대에 이르러 유력 문중으로 성장하였다. 후손인 장주한(蔣柱漢)[1605~1669]이 만년에 가천동으로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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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시지동에 있는 장자원을 추모하는 재실. 덕산재(德山齋)는 장자원(蔣自元)[?~?]이 부모의 묘소 옆에 임시로 집을 짓고 사모하는 정을 나타내던 곳이다. 장자원의 본관은 아산(牙山)이며, 자는 성인(性仁), 호(號)는 덕봉(德峰)이다. 감찰 장간(蔣芉)의 아들이며, 성종 때 생원시에 합격하여 한성부참군을 지냈다. 일찍이 덕행과 효행으로 사림들의 추앙을 받았으며,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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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지산동에 있는 경주김씨 참의공파조 김수남 추모 재실. 덕암재(德巖齋)는 경주김씨(慶州金氏) 참의공파(參議公派) 파조인 우재(愚齋) 김수남(金守南)을 추모하기 위하여 1937년 후손들이 묘소 앞에 건립하였다. 김수남은 인조(仁祖) 때 일어난 이괄(李适)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병자호란 때에도 큰 공을 세워 이조참의에 증직되었다. 아들인 김대길(金大吉)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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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하시찬을 추모하는 재실. 독무재(獨茂齋)는 조선 후기의 학자 하시찬(夏時贊)[1750~1828]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추모 재실이다. 하시찬은 1750년(영조 25)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서 태어나 당대의 석학이던 김경호(金鏡湖)·송성담(宋性潭)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지금의 독무재가 있는 곳에서 서쪽으로 50m 떨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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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하시찬을 배향한 달성하씨 문중 재실. 돈목재(敦睦齋)는 열암(悅菴) 하시찬(夏時贊)[1750~1828]을 배향하고 있는 달성하씨(達城夏氏) 문중 재실이다. 달성하씨의 시조는 중국 송나라에서 대도독을 지낸 하흠(夏欽)이다. 하흠은 인종(仁宗) 때 고려에 귀화하여 달성(達成)[현 대구광역시]에 정착하였고, 하흠의 아들 하용(夏溶)은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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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두사충을 추모하는 재실. 모명재(慕明齋)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원군으로 참전하였다가 조선에 귀화한 두사충(杜師忠)을 기리기 위하여 두릉두씨(杜陵杜氏) 문중에서 묘소 앞에 건립한 재실이다. ‘모명재’는 고국인 명나라를 사모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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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 있는 옥산전씨 문중 재실. 무동재(武洞齋)는 대구 지역 유학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1532~1585]의 강학소였던 계동정사(溪東精舍) 옛터에 건립한 옥산전씨 통례공 종중의 재실이다. 전유성(全由性)·전순손(全順孫)·전익견(全益堅)·전복견(全復堅)·전연(全璉)·전침(全琛)·전순(全珣)·전계신(全繼信)·전계영(全繼英)·전응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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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시지동에 있는 박해를 추모하는 재실. 솔일재(率一齋)는 밀양박씨(密陽朴氏) 대사헌공파 파조인 박해(朴咳)[1347~?]를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민묘 수호 재실이다. 박해의 호는 귀림(歸林)이며, 1347년(충목왕 3) 밀직부원군(密直府院君) 박중미(朴中美)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377년(우왕 3) 문과에 급제하였다. 벼슬이 대사헌에 이르렀으나 국사가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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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양달화를 추모하는 재실. 영모재(永慕齋)[중화양씨]는 조선 영조(英祖) 때의 학자인 양달화(楊達和)[1694~1756]를 추모하기 위하여 1913년에 건립되었다. ‘영모재’는 길이 흠모하는 집이라는 의미이며, 영모재에서 북쪽 방향으로 멀지 않은 곳에 양달화의 묘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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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는 배석봉·배영을 추모하는 재실. 영사재(永思齋)는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던 배석봉(裵錫鳳)과 배영(裵泳)[1810~1852]을 기리기 위하여 성산배씨 문중에서 건립한 추모 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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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노변동에 있는 정동범·정지언을 추모하는 재실. 충효재는 노암(蘆庵) 정동범(鄭東範)[1710~1793]과 아들인 면암(勉庵) 정지언(鄭之彦)[1740~1814]의 충절과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청주정씨(淸州鄭氏) 노변 문중에서 1996년 건립한 재실이다. 정동범은 이인좌의 난 때 의병을 일으켜 성주목사 이보혁(李普赫)과 함께 합천에서 싸워 전공을 세웠으며, 아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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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두한필을 기리는 정려각. 두한필(杜漢協)은 순조 23년(1823)에 태어나 고종 30년(1893)에 세상을 떠났다. 두한필의 자는 영여(永汝), 호는 소남(小植), 본관은 두릉(杜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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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지산동에 있는 학산공 양해일과 우산공 양헌방 부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개항기에 건립한 정려각. 학산공 양해일(楊海一)[1797~1873]과 우산공 양헌방(楊憲邦)[1826~1878]의 효행은 다음과 같다. 양해일은 호가 학산(鶴山), 자는 진원(進源)이다. 천성이 순박하고 올바랐는데, 효성이 지극하여 어버이를 극진히 섬겼으며, 아버지의 목숨이 경각에 달하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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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시지동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정동범의 정려각. 정동범 정충각은 조선 후기인 1728년(영조 4)에 발생한 ‘이인좌(李麟佐)의난’에 공을 세운 노암(蘆庵) 정동범(鄭東範)[1710~1793]의 충의를 기리고자 1892년(고종 29)에 건립되었다. 정동범은 이인좌의 난 때 열아홉 살의 젊은 나이로 의병을 일으켜 큰 공훈을 세웠다. 난이 평정된 후에는 상훈을 모두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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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시지동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정지언의 정려각. 정지언 정효각(鄭之彦 旌孝閣)은 조선 후기 효자인 면암(勉庵) 정지언(鄭之彦)[1740~1814]의 효행을 기리고자 건립한 정려각이다. 1892년(고종 29)에 사림(士林)에서 정지언의 효행을 관찰사에게 아뢰어 조정으로부터 효자의 정려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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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효자 하광신의 정려각. 하효자정려각은 고려 때 이부시랑을 지낸 하광신(夏光臣)의 지극한 효성을 기리기 위하여 조정에서 세운 비(碑)와 각(閣)이다. 정려비의 비문은 숙종(肅宗) 때 이조판서 겸 홍문관 대제학이던 황경원(黃景源)이 지었고, 비문의 글씨는 통훈대부 사헌부지평 이약채(李若菜)가 썼다. 하광신은 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는데, 매서운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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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에 있는 개항기 대구군수 이범선의 공적을 기록한 불망비. 군수 이후범선 영세불망비(郡守 李侯範善 永世不忘碑)는 개항기인 1898년 큰 홍수가 났을 때 대구 지역의 수령으로 재직하고 있었던 이범선(李範善)[1835~1905]의 공적을 기리고자 1899년(고종 36) 에 세운 불망비이다. 이범선은 자가 치원(穉元), 호는 수서(水西)이며, 호조정랑과 한성부 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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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조선 후기 명나라 귀화인 두사충의 신도비. 두사충 신도비(杜師忠神道碑)는 두사충[?~?]의 후손 두경보(杜敬甫)[1775~1852]가 1802년에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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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범물동에 있는 개항기 정려비. 성주 배씨 정려비(星州裵氏旌閭碑)는 1764년(영조 40)에 태어나 1788년(정조 12)에 세상을 떠난 효부 배씨의 효행을 기리고자 건립한 정려비이다. 배씨는 밀양박씨(密陽朴氏) 박후성(朴厚成)의 아내이다. 배씨의 시집살이는 평탄하지 않았다. 남편이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자 백방으로 약과 의원을 구하였으나 남편의 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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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에 있는 조선 후기 대구판관 이서의 치적을 기리고자 세운 송덕비. 이공제비(李公隄碑)는 정조 때 대구판관이었던 이서(李溆)[1728~1794]의 치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송덕비(頌德碑)이다. 현재 이공제비는 1899년(고종 36)에 세운 군수 이후범선 영세불망비(郡守李侯範善永世不忘碑)와 나란히 서 있으며, 군수 이후범선 영세불망비와 함께 1988년 5월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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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 있는 조선 전기 성리학자 전경창의 묘비. 전경창 묘비는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1532~1585]이 죽고 나서 고향집인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으로 상여를 운구하여 1586년에 안장하고 1587년에 비를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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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 있는 조선 전기 성리학자 전경창의 유적비. 전경창 유적비(全慶昌 遺蹟碑)[계동선생 옥산전공 유적비(溪東先生玉山全公遺蹟碑)]는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1532~1585]을 기리고자 2003년 12월 21일에 건립한 유적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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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무관 전계신의 신도비. 전계신 신도비(全繼信神道碑)[증자헌대부 병조판서 파수 옥산전공 신도비(贈資憲大夫兵曹判書巴叟玉山全公神道碑)]는 조선 후기 무관이자 의병장으로도 활약한 전계신[1562~1614]을 기리고자 2019년 11월에 건립한 비이다. 전계신은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파잠리]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 중이던 1594년 별시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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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성동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고산서원의 유허비. 조선시대 서원 건축물인 고산서당(孤山書堂)[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은 정확히 언제 건립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과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1563~1633]가 강학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조선 전기인 16세기에는 이미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1690년(숙종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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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지산동에 있는 효자 하잠동의 효성을 기리어 세운 비석. 효자 하잠동지려비(孝子河潛同之閭碑)는 조선 전기 인물인 하잠동[?~?]의 효행을 기린 정려비이다. 하잠동의 생애에 대하여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고, 하잠동의 효행만이 전하여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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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는 조선 후기 대구 지역 유학자 모당 손처눌의 묘소.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은 1553년(명종 8) 6월 25일 대구 수성 상동에서 출생하여 1634년(인조 12) 6월 15일 평소에 강학하였던 영모당(永慕堂)에서 82세로 사망하였다. 9월 12일 수성구 황금동[황청동] 선영 아래 손좌(巽坐)에 장례하였다. 장례에 모인 사람은 420여 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