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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일요등교진상조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063
한자 二·二八 日曜登校 眞相調査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60년 3월연표보기 - 2·28일요등교진상조사 시작
종결 시기/일시 1961년 2월연표보기 - 2·28일요등교진상조사 종료
성격 사건

[정의]

1960년 3월부터 1961년2월까지 있었던 2·28민주운동의 원인인 일요 등교 지시의 책임 소재를 밝히기 위한 진상 조사.

[역사적 배경]

1960년 2월 28일 이승만 정권은 야당의 선거 유세장에 가지 못하도록 일요일인데도 대구 시내 모든 초중고교생에게 등교를 강요하였다. 대구 지역 8개 고등학교 학생들은 당국의 부당한 일요 등교 명령에 항거하여 ‘자유와 민주주의를 실천하자’, ‘학생들의 기본권을 보장하라’, ‘학생을 정치도구화하지 말라’고 외치면서 시위를 하였다. 이후 학생 시위는 서울, 대전, 수원, 부산 등지로 확산되었다. 2·28민주운동은 3·15마산의거로 이어졌고, 이후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어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960년 3월부터 1961년 2월까지 진행되었던 2·28일요등교진상조사2·28민주운동의 원인으로 작용한 일요 등교 지시의 진상 조사를 통하여 책임 소재를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

[경과]

2·28일요등교진상조사는 1960년 3월 지역의 언론에서 2·28민주운동의 책임 소재 규명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키며 시작되었다. 1961년 2월 대구지방검찰청의 특별검사를 통하여 진상 조사가 계속되었다. 특별검사는 자유당 경북도당 부위원장을 비롯하여 관련 인사들을 차례로 소환하여 1960년 2월 중순 대구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기관장 회의 내용과 기관장들의 발언 요지를 조사하였다.

[결과]

2·28일요등교진상조사에 대한 결과는 제한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구상공회의소 기관장 회의에 참가한 엄창섭[경상북도의장], 금용국[자유당 경북도당 부위원장] 등은 1960년 1월에 공민권(公民權) 제한 자동 케이스 제4조 5호 해당자로 발표되었다.

[의의와 평가]

2·28일요등교진상조사는 학원을 정치 수단으로 악용한 이승만 정권의 책임을 묻는 역사적 의미가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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