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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민족통일촉진궐기대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066
한자 三一 民族統一促進蹶起大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61년 3월 1일연표보기 - 3·1민족통일촉진궐기대회 개최
최초 설립지 달성공원 -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공원로 35[달성동 294-3]지도보기
성격 사회운동

[정의]

1961년 3월 1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개최한 통일 궐기대회.

[개설]

3·1민족통일촉진궐기대회는 3·1절 제42주년을 맞아 통일 문제에 대한 사회적 여론을 환기하고 대구 시민의 통일 의식을 고양할 목적으로 민족통일경북도연맹이 개최한 통일 궐기 대회이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3·1민족통일촉진궐기대회는 서울에서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가 출범하던 1961년 2월 25일 민족통일경북도연맹 사무실에서 열린 민족통일경북도연맹 상임집행위원회 회의에서 개최를 결정하였다. 1961년 3월 1일 3만 명의 대규모 인파가 모인 가운데 달성공원에서 3·1민족통일촉진궐기대회가 열렸다.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의 박진과 박래원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3·1민족통일촉진궐기대회민족통일경북도연맹 이정상의 사회로 시작되었다. 이어 『영남일보』 논설위원 김충섭(金忠燮)이 ‘국내에서 본 우리 통일’, 민주민족청년동맹의 이여모(李余模)가 ‘통일의 길은 남북 협상으로’라는 제목의 연설을 하였고 청구대학교[현 영남대학교] 학생 이병헌이 “장 정권은 경제 파동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용의 강연을 하였다.

이어 김성달이 궐기사를 낭독하였고 ‘선건설 후통일론’을 비판하고 남북교류, 국제 운동 경기 공동 선수단 파견 등이 포함된 결의문도 채택하였다. 오후 6시부터 참가자들은 ‘실업자의 일터는 통일에 있다’는 현수막을 앞세우고 선전용 지프차를 선두로 북성로를 경유하여 중앙통을 거쳐 반월당까지 “통일만이 살 길이다”라는 구호를 외치고 선전문을 살포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의의와 평가]

민족통일경북도연맹이 남북 협상에 의한 민족 자주적 평화통일 방안을 선전하고 실현할 목적으로 개최한 3·1민족통일촉진궐기대회는 대구 지역에 자주적 평화통일의 의미를 확산시켰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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