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1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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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校舍返還運動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1960년 11월 대구의 3개 중고교에서 미군이 임시 주둔 시설로 사용하는 학교 건물의 반환을 요구한 운동.
[개설]
교사반환운동은 대구의 대구공업고등학교, 경일중학교, 대구중학교 등 3개교에서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임시 주둔 시설로 사용하는 대구의 학교 건물 반환을 요구한 활동을 말한다.
[역사적 배경]
한국전쟁이 정전되었음에도 대구에 주둔한 미군이 여전히 학교 건물을 군대 시설로 활용함에 따라 학생들의 교육시설이 장기간 열악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 배경이 되었다.
[경과]
교사반환운동은 1960년 11월 29일 대구공업고등학교 학생들이 미군에 교사 반환을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60년 11월 당시 대구공업고등학교의 건물에 미8군 소속 16병기 중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정전 뒤에도 학교 교사가 반환되지 않자 임시 건물에서 학업을 이어 가기가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교사 반환 결의문을 통하여 교사 반환을 요구하고, 주한 미국대사 메카나기와 국방부장관 권충돈에게 보낼 메시지를 채택하였다. 학생들은 ‘가교사 다 헐었다. 본 교사를 돌려다오’, ‘운동장 없는 학교 어디 있느냐’ 등의 현수막을 들고 가두행진을 벌였다.
1960년 12월 경일중학교도 학교 교사를 계속 사용하고 있는 제5관구 사령부를 향하여 연병장까지 몰려가 교사 반환을 요구하였다.
[결과]
교사반환운동은 미군과 국방부가 책임과 권한을 미루는 상황에서도 미군과 관련 협상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교사 반환은 예산이 반영되어야 하고, 군사시설과 관련된 것이었기에 곧바로 해결되지는 못하였다.
[의의와 평가]
교사반환운동은 학생들이 학업권을 보장받기 위하여 벌인 자발적인 의사 표현이었다. 또한, 4·19혁명을 계기로 그동안 참으며 인내한 학업권을 되찾기 위한 교육 운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