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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1구 광산학살 사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191
한자 達城一區 鑛山虐殺 事件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인 학살 사건

[정의]

1950년 6·25전쟁 전후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 신동고개의 달성1구 광산에서 벌어진 집단학살 사건.

[역사적 배경]

6·25전쟁 전후 달성군 가창면 신동고개[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 있는 달성1구 광산에서 우익 반공 단체와 국가권력에 의한 집단학살이 자행되었다. 달성1구 광산학살 사건(達城一區鑛山虐殺事件)4·19혁명 직후인 1960년 구성된 양민학살 국회특별조사반 경북반의 실지 조사에서 드러났다.

[경과]

6·25전쟁 전인 1949년 음력 3월 무장한 우익 반공 단체 호림부대달성1구 광산에 들이닥쳤다. 호림부대는 마을 주민들을 ‘빨갱이’로 몰아 한 달 간에 걸쳐 학살을 자행하였다. 또 밤에 집 밖에서 활동하는 주민들을 사상이 불순하다고 덮어씌워 창고에 잡아 가두고 총과 칼, 주먹으로 폭력을 휘둘렀다. 그 가운데 부산 가야동에 살던 당시 52세의 강덕수(姜德洙)가 광산 주변에 있는 자신 소유 산의 목재를 팔러 왔다가 돈이 있는 것으로 오인을 받아 무턱대고 잡혀가 살해되었고, 또 강덕수의 친구 김해식으로 오인을 받은 김혜수가 죽임을 당하였다.

[결과]

6·25전쟁 직후 달성1구 광산학살 사건으로 집단학살된 사람들은 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 대구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기결수와 미결수 등이었다. 1950년 7월 6일부터 약 1주일 동안 대구형무소에서 수감 중이던 기결수 371명과 미결수 1,031명 등 1,402명의 수감자들이 대구형무소 직원을 통하여 특무대 헌병 및 경찰 수사과원들에게 넘겨져 달성1구 광산과 경산 코발트 광산 등지에서 집단학살되었다.

4·19혁명 직후인 1960년 구성된 양민학살 국회특별조사반 경북반달성1구 광산학살 사건을 조사할 때 증언에 나선 주민 장춘극의 진술에 따르면 트럭 한 대에 미혼 여성으로 간주되는 30여 명이 끌려와 집단학살되었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달성1구 광산학살 사건6·25전쟁 이전의 경우 우익 반공 단체인 호림부대에 의하여 자행되었다. 6·25전쟁 직후에는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기결수와 미결수 등 1,400여 명 이상이 달성1구와 가창 그리고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국가권력에 의하여 집단학살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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