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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민주화교수협의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219
한자 大邱慶北民主化敎授協議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89년 3월연표보기 - 대구경북민주화교수협의회 설립
성격 학술연구단체

[정의]

1989년 3월 대구 및 경상북도 지역에 설립된 전국교수협의회 소속 지회.

[설립 목적]

민주화를 위한 대구경북민주화교수협의회(大邱慶北民主化敎授協議會)는 대학과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고자 설립되었다.

[변천]

1987년 7월 21일 전국 28개 대학 교수 80여 명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1989년 3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대구경북지회[대구경북민주화교수협의회]가 설립되었다. 1985년 대구 지역에서 설립된 지방사회연구회 소속 교수들이 대구경북민주화교수협의회에 참여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구경북민주화교수협의회는 교육·정치의 민주화 외에도 환경·농업·노동·학생운동 등 각 부문의 민주화운동에 학술적 지원을 하였다. 대표적으로 1989년 경북 고추 싸움 현장 조사, 산동골프장 건설 저지 운동, 팔공골프장 농약 투여 사건 등 농민운동을 지원하였다. 1919년 대구·경북 지역에서 발생한 두산전자의 페놀식수오염사건에 대한 연구 활동을 펼치며 대구환경운동연합이 설립되는 데 일조하였다. 김형기·이윤갑·홍덕률·최병두 등은 대구 지역 노동 운동가들과 함께 노동자학교를 운영하고, 노조 활동에 대한 지원도 펼쳤다. 또한 대구경북민주화교수협의회는 1989년 6월 8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구지부 설립에 대한 지지 성명서를 발표하고, 70여 명의 교수가 전국 최초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정식 가입하는 선례를 남겼다.

대구경북민주화교수협의회는 학내외 민주화운동도 전개하였다. 대구경북민주화교수협의회 계명대지회 소속 교수 56명은 1987년 5월 6일 4·13 호헌 조치와 관련하여 교수시국선언을 발표하였다. 교수시국선언은 첫째, 4·13 호헌 조치의 철회와 개헌 작업 재개를 촉구하였다. 둘째, 국민의 생명과 인간의 존엄성은 어떤 이유로도 유린될 수 없기에 인간다운 생존권 보장과 언론·집회·결사의 자유 보장을 요구하였다. 셋째, 공권력에 의한 교권 침해를 즉시 중단하고, 학문 연구의 자유 보장, 교육의 민주화, 학원의 자율을 요구하였다.

대구경북민주화교수협의회 영남대지회도 1988년 11월 8일 영남학원 민주화 공동추진위원회를 발족하였으며, 재단 이사진의 전면 퇴진 요구, 등록금 동결 등을 주장하여 재단 이사장 이사의 사퇴를 이끌어 냈다. 대구경북민주화교수협의회영남대학교·계명대학교·대구대학교·대구가톨릭대학교 등의 학내 민주화나 현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기 때문에, 학교 측과의 마찰이나 갈등이 심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교수들이 징계 또는 해직되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대구경북민주화교수협의회는 각 대학 단위의 민주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민주화에 이바지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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