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3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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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在滿歸鄕同胞戰災者同盟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설립 시기/일시 | 1945년 11월 - 재만귀향동포전재자동맹 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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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대구공회당 - 대구광역시 중구 태평로2가 |
성격 | 원호 단체 |
[정의]
1945년 11월 대구광역시에서 결성된 재만 귀향 동포 원호 단체.
[개설]
재만귀향동포전재자동맹(在滿歸鄕同胞戰災者同盟)은 1945년 11월 대구공회당(大邱公會堂)에서 만주로부터 귀향한 전재(戰災) 동포들을 위해 결성한 원호 단체이다. 본부를 대구에 두고 전국을 범위로 활동하였다. 재만귀향동포전재자동맹의 조직과 임원은 고문에 조동근(趙東根)·김석범(金碩範), 회장에 곽인수(郭仁守), 부회장에 윤봉균(尹鳳均)·박순도(朴淳度), 총무부장에 김광호(金光鎬), 외교부장에 김은식(金殷植), 사업부장에 박광수(朴光秀) 등이었다. 광복 후 대구역에 내린 귀향 동포는 하루 3,000명 정도였고, 1946년에 들어서는 하루 평균 300여 세대의 인구 증가를 나타냈다. 1946년 1월 말 무렵 대구에는 총 26만 명의 귀향 동포가 거주하였다. 1946년 7월 귀향 동포를 수용하기 위한 수용소가 대구에 6개 정도 있었다. 귀향한 만주 동포는 주로 1945년 12월 20일 대봉동에 있는 전 일본 육군 장교 집합소에 설치된 제2수용소에 수용되었다.
[설립 목적]
재만귀향동포전재자동맹의 설립 목적은 귀향한 만주 이재민의 생활 안정, 구제, 정주(定住) 동포의 민족애 환기, 민주주의 국가 건설에 대한 협력 등이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재만귀향동포전재자동맹은 결성과 함께 사업 계획을 발표하였다. 중점 사업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한국 내에 있는 관련 기관과의 밀접한 연락과 지원 아래 귀환 전재자 구제 사업에 집중한다. 둘째, 간부를 파견하여 귀환 전재자의 재해 정도와 재만 전존(戰存) 동포의 피해 정도 및 재산을 조사하여 대책에 만전을 기한다. 셋째, 전재 동포의 귀향을 촉진한다. 넷째, 한국 내 각 도에 있는 지부와 군 단위로 신속하게 분회 조직한다.
재만귀향동포전재자동맹은 한반도 전체에 조직을 갖출 계획 아래 우선은 남한 지역을 목표로 하여 조직 결성에 나섰다. 전국에 파견될 파견 대표 백운□(白雲□), 최재일(崔載日), 서효상(徐孝祥), 박명규(朴命圭) 등은 1945년 11월 21일 대구를 출발하였다. 재만귀향동포전재자동맹은 1945년 12월 중순 재만 귀향 동포들이 두고 온 재산을 찾기 위하여 구제단을 편성하여 파견하였다.
하지만 귀향 동포들은 광복 후 대구에서 식량난, 주택난, 직업난을 겪으며, 대구를 떠나 농촌이나 만주로 되돌아가기를 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2수용소의 귀향 동포 293명은 1946년 8월 10일 권영세(權寧世) 신임 대구부윤(大邱府尹)을 찾아가 진정서를 내고 만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하였다. 심지어 귀향 만주 동포가 북행길에 올랐다가 38선을 통과하지 못한 채 경기도 개성 근처에서 유리걸식하는 모습으로 발견되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재만귀향동포전재자동맹은 광복 후 대구에 본부를 두고 만주 귀향 동포를 위한 원호 활동에 이바지하였으나 식량난을 비롯하여 직업난, 주택난으로 인하여 다시 만주로 되돌아가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