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대구전기요금 감하 기성동맹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354
한자 大邱電氣料金 減下 期成同盟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29년 6월 8일연표보기 - 대구전기요금 감하 기성동맹 결성
종결 시기/일시 1929년 7월 27일연표보기 - 대구전기요금 감하 기성동맹 해체
성격 시민 단체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에서 대흥전기주식회사를 상대로 전기료 인하를 위하여 만든 시민 단체.

[역사적 배경]

1920년대 대구에 전기를 공급하는 대흥전기주식회사의 전기 요금이 다른 도시에 비해 높은 것이 사회 문제로 부각되자 대흥전기주식회사도 전기 요금을 인하할 계획으로 당국에 인가 신청을 하였다. 그러나 지역 사회에서는 대흥전기주식회사의 전기 요금 인하율보다 더 큰 폭의 인하를 위하여 기성동맹을 조직하였다.

[경과]

1929년 6월 8일 대구상업회의소에서 각 정총대와 부민 유지 수백여 명이 모여 대흥전기주식회사의 전기 요금 문제를 논의한 끝에 만장일치로 전기 요금 인하를 위한 기성동맹을 조직하기로 결의하였다. 대구전기요금 감하 기성동맹의 임시 의장에 니기타[和田], 부의장에 서병조(徐丙朝)를 선출하였다. 대구전기요금 감하 기성동맹은 한국인과 일본인의 연합으로 조직된 특징을 보였다. 그 뒤 대구전기요금 인하 기성동맹과 뜻을 같이 할 민족별 단체를 구성하였다. 1929년 6월 10일 일본인 사회가 전기요금 저하기성동맹회를 결성하였다. 1929년 6월 16일에 한국인은 조양회관에서 대구상공협회를 중심으로 대구전기요금 감하 실현회를 결성하였다.

대구전기요금 감하 기성동맹대흥전기주식회사가 제시한 1할 2부 인하보다 더 큰 폭인 2할 이상의 인하를 요구하였다. 대구전기요금 감하 기성동맹은 전기료 인하를 위해 조선총독부와 담당 기관인 체신국 등을 방문하는 활동을 벌였다. 이에 대구부에서도 전기 요금 인하를 조정하려고 대흥전기주식회사대구전기요금 감하 기성동맹 관계자들과 협의를 진행하였다.

[결과]

대구전기요금 감하 기성동맹의 전기료 인하 노력으로 1927년 7월 27일 전기 요금은 전등의 경우 약 1할 4분, 동력의 경우 약 1할 7분 정도 인하되는 것으로 매듭지어졌다. 전기 요금의 인하율은 대흥전기주식회사의 당국에 제시한 1할 1분 내지 1할 2분보다는 폭이 크나 대구전기요금 감하 기성동맹이 요구한 2할 이상보다는 낮은 정도였다. 대구전기요금 감하 기성동맹은 같은 날 긴급 간사회를 열고 대구전기요금 감하 기성동맹를 발전적으로 해체하였다.

[의의와 평가]

대구전기요금 감하 기성동맹대흥전기주식회사의 전기 요금이 서울, 부산, 평양, 진남포 등에 비하여 높은 것에 문제를 삼고 한일 양 민족의 연합으로 시민운동의 차원에서 전기료의 인하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졌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