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3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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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電報局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임삼조 |
[정의]
개항기 대구 지역에서 전기통신 업무를 관장한 전신 사무국.
[설립 목적]
대구전보국(大邱電報局)은 대구 지역의 전기통신 업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내용]
전보국은 1885년(고종 22) 9월 28일 서울과 인천 간 전신이 개통되면서 설치되었다. 서울에 한성총국(漢城總局), 인천에 한성총국 분국(分局)을 설치하고 평양과 의주를 비롯한 각 지역에 분국을 설치하기 시작하였다. 조선 정부가 전선을 가설하고 전보국을 설치하자 청과 일본은 적극적으로 조선의 전선 가설권을 확보하고자 노력하였다. 조선 전역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정세 변동을 신속하게 파악하기 위하여 통신시설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청이 서로전선(西路電線)을 가설하였고, 일본이 남로전선(南路電線)의 가설을 시작하여 1888년 끝마쳤다. 이때 대구를 비롯한 청도(淸道), 밀양(密陽), 양산(梁山), 동래(東萊)의 전신과 순판병(巡辦兵)은 모두 밀양부사(密陽府使) 정병하(鄭秉夏)가 감독하였다. 이 무렵 대구 지역에도 전보국 분국이 설립된 것으로 보인다. 서로전선과 남로전선에 이어 1891년에는 한성-원산 간 북로전선(北路電線)이 개통되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일본은 서울-인천으로 이어지는 경인 간, 부산-대구-충주-서울로 이어지는 경부 간에 불법적으로 군용 전선을 가설하였다. 1894년 7월 22일 일본군은 대구전보국을 빼앗은 뒤 전국 위원(電局委員)을 쫓아내고 동래, 대구, 상주, 문경 등에 주둔하여 전신 시설을 독점하였다. 청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기울어지자 일본은 서로전선과 북로전선도 모두 강탈하여 군용 전선으로 사용하며 조선의 거의 모든 전선을 확보하고 통신시설을 장악하였다.
1895년 1월에는 「한일전선설치조관속약(韓日電線設置條款續約改正案)」을 체결하여 앞으로 건설하는 전선 일체의 수축(修築) 및 관리 업무를 일본이 대행하도록 만듦으로써 조선의 전신 사업을 독점하고자 하였다. 1896년 삼국[러시아·독일·프랑스]의 간섭과 을미사변으로 인하여 조선 내 일본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지고, 조선 정부의 강력한 저항으로 1896년 7월 서로전선과 북로전선은 조선 정부에 반환하였다. 그렇지만 경부 간 군용 전선은 그대로 관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