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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410
한자 刀水園
영어공식명칭 Dosuw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지명/시설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공원|위락시설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에 있던 소공원.

[개설]

일제강점기 도수원(刀水園)달성공원(達成公園), 동화사(桐華寺)와 함께 대구를 대표하는 명소였다. 도수원은 인공 연못을 조성하여 만든 공원이었으며, 낮에는 유료 공원으로, 밤에는 별장형 요정으로 사용하였다.

[변천]

도수원은 달성판관[대구시장 격] 윤성환(尹成垣)의 별장이었던 영귀정을 일본인 사업가가 매입하여 조성한 공원 겸 별장형 요정으로 당시 교동시장 안에 있던 요정 청수옥의 별장이었다. 약 2만㎡의 부지에 연못을 파고 꽃과 나무를 심어 소공원을 조성하고 ‘도수원’이라 이름 지었다. 1929년 5월 1일부터 토목·건축업 관련 합자회사 세량조합(世良組合)의 사장인 세라[世良朝吉]가 경영하였고, 1932년부터는 대구권번(大邱券番)의 대주주 노세 리키조[野瀨力藏]가 경영하였다. 1934년 2월 15일 도수원에 불이 나 영귀정 1동이 전소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도수원은 일제강점기 대구 명소를 찍은 우편엽서에 단골로 등장하던 곳이다. 버드나무가 드리워진 정원 한복판에 조성된 연못에는 2인승 거룻배가 떠다녔고, 무지개다리를 건너 별실로 들어가면 자연 풍광을 즐길 수 있었다.

당시 도수원은 낮에는 대구에서 유일한 상업용 유원지였고 밤에는 별장형 요정으로 운영되었다. 도수원 내에 있던 영귀정에서는 각종 모임이 열렸는데 대표적으로 1925년 5월 대구 사가현인회 총회, 1937년 3월 부산일보 대구지사 신축 낙성식, 1939년 5월 사상보국연맹 대구지부 간친회 등이 열렸다.

한편 도수원은 각종 문학작품에 단골 소재로 사용되었다. 1924년 대구부 남산정[현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의 서기수(徐基洙)는 동아일보 대구지국 주최 글짓기 대회 현상소년문예(懸賞少年文藝) 분야에서 「도수원(刀水園)의 초춘(初春)」이라는 주제로 1등에 입상하였다. 대구가 고향인 이상화가 1930년 10월 『별건곤』 제33호에 발표한 「대구행진곡(大邱行進曲)」이라는 시에도 도수원이 등장한다.

[현황]

도수원은 한때 대구역 기관차 차고로 사용되었다가 지금은 칠성시장으로 바뀌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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