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417 |
---|---|
한자 | 獨促靑年聯盟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설립 시기/일시 | 1946년 - 독촉청년연맹 결성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46년 5월 15일 - 독촉청년연맹 독립전취경북국민대회 개최 |
성격 | 청년단체 |
설립자 | 대한독립촉성경북국민회 |
[정의]
1946년 대구광역시에서 결성된 청년 단체.
[설립 목적]
독촉청년연맹(獨促靑年聯盟)은 모스크바삼상회의 결정안에 대한 반탁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발족한 대한독립촉성경북국민회의 노선을 실현할 목적으로 결성된 우익 청년층의 결집체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독촉청년연맹은 1946년 3월 조선독립경북촉진회와 탁치반대조선국민총동원위원회경북본부가 통합하여 발족한 대한독립촉성경북국민회의 청년 단체로 출범하였다. 독촉청년연맹은 미소공동위원회 결렬 이후 1946년 5월 15일 대구역 광장에서 대한독촉경북국민회, 경북기독교협회, 천주교협회, 경북불교협회, 정동회(町洞會) 등과 공동으로 반탁 자주독립 국가 수립을 위한 독립전취경북국민대회를 개최하였다.
독립전취경북국민대회에서 채택된 결의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는 반동 파괴주의자들에 의한 미소 회담 무기 휴회 책임을 규명하며 국제여론에 심판을 구함, 둘째, 우리 손을 자주 정부의 자율적 수립을 촉진하여 민의의 귀일을 기함, 셋째, 우리는 민족 통일의 암인 38선 장벽의 철폐를 목표로 국민 동원의 실적을 거함, 넷째, 반역의 망동을 일소하여 민족 기강의 숙청을 도함, 다섯째, 우리의 자주독립을 부인하는 신탁통치를 삼천만의 총의로써 한사코 배격함 등이었다.
독촉청년연맹은 1946년 10월 3일 대구의 언론계·청년운동계 등의 청장년들과 함께 10월항쟁 대책 회합을 가졌다. 회합에 참석한 사람들은 최해청, 최석채, 이우줄, 김영달, 최일행, 김종화, 문장인, 박남현 등이었다. 독촉청년연맹은 회합을 통하여 미군의 10월항쟁 진압에 거부감을 나타내면서 ‘민족자결투쟁본부’를 조직하였다.
[의의와 평가]
대한독립촉성경북국민회의 청년 단체로 결성된 독촉청년연맹은 우익의 반탁 노선을 지지하며 자주독립 국가 수립을 위하여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