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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혁명인사규탄대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472
한자 反革命人事糾彈大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학생운동

[정의]

1960년 7월 대구의 학생들이 7·29총선거에 입후보한 자유당 관련자 후보의 사퇴 촉구 및 반민주·반혁명 행위를 규탄한 집회.

[개설]

반혁명인사규탄대회는 1960년 제2공화국의 첫 민의원과 참의원을 선출하는 7·29총선거가 가까워지는 시점에서 대구 지역 학생들이 총선거에 나선 과거 자유당 관련자의 후보 사퇴를 촉구하고 반민주·반혁명 행위를 규탄한 집회였다.

[역사적 배경]

반혁명인사규탄대회는 1950년대 자유당 정권이 행한 비민주적 정치 행태와 구조를 극복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인식과 의지가 현실 참여로 발현된 것이었다.

[경과]

반혁명인사규탄대회는 1960년 7월 16일 대구역 광장에서 대구의 12개 단과대학과 26개 고등학교 등 1만 명의 학생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반혁명인사규탄대회에서 학생들은 7·29총선거에 과거 자유당 관련자들이 입후보자로 나선 것을 강력하게 비난하면서 후보 사퇴를 촉구하였다.

반혁명인사규탄대회는 1960년 7월 27일 수성천 변에서 열린 반혁명세력 규탄 학생 궐기대회로 이어졌다. 7월 27일의 학생 궐기대회는 서울대학교 국민계몽대, 경북대학교, 대구대학교, 청구대학교[현 영남대학교] 등 4개 대학의 대학생들이 공동 주최한 대회였다. 학생 궐기대회에서 대학생들은 ‘부패 기성세력은 물러가라’ 는 등의 5개 항의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결과]

반혁명인사규탄대회7·29총선거에서 자유당 출신 후보자의 낙선에 영향을 미쳤다. 또한 「부정선거관련자 처벌법」, 「반민주행위자 공민권 제한법」, 「특별검사·특별재판 조직법」이 1961년 1월 12일 공포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의의와 평가]

반혁명인사규탄대회는 대구의 학생들이 1950년대 자유당 정권에 대하여 역사적 책임을 묻는 것이었고, 4·19혁명 시기 민주주의 운동에 이바지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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