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4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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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朝鮮防共協會 大邱支部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시용 |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에 일제가 방공·국방 사상을 강화하기 위하여 조직한 친일 단체.
[개설]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하여 국가총동원 체제로 개편한 일제는 공산주의 사상을 단속하고 ‘일본 정신’을 앙양하며, 일상에서의 선전 감시 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1938년 8월 15일 조선방공협회를 조직하였다. 조선방공협회 조직 이후 각 지역 단위 조직이 빠른 속도로 결성되었다. 중앙의 조선방공협회를 중심으로 도 단위의 연합 지부, 각 지역 경찰서 단위의 지부, 각 지부 밑의 방공단과 방공부로 구성되었다.
조선방공협회 총재는 정무총감이 맡았고, 회장은 경무국장이 맡았다. 연합 지부 지부장은 각 도지사, 부지부장은 도 경찰부장, 지부장은 각 경찰서장이 맡았다. 읍면 단위에는 방공단이 설치되었고, 학교나 군수공장 등의 단체에는 방공부가 설치되었다. 1938년 12월까지 전국 254개 경찰서 단위에 방공협회 지부가 조직되었고, 지부 아래 1,789개 방공단이 조직되었다. 조선방공협회 대구지부(朝鮮防共協會大邱支部)는 1938년 10월 9일에 결성되었다.
[설립 목적]
조선방공협회 대구지부는 일제가 공산주의 사상을 단속하고 일본 정신을 앙양할 목적으로 조직하였다. 각종 강연회, 좌담회, 연극 상연, 영화 상영, 사상 전람회 등을 통하여 일반 민중들에게 방공 사상과 국방 사상을 전파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조선방공협회 대구지부의 결성식은 대구신사(大邱神社)에서 열렸다. 지부장은 대구경찰서장 나가타[永田仁助], 간사에는 대구경찰서 고등주임 후쿠다[福田松助] 등 7명이 임명되었다. 그리고 42명의 평의원을 선임하였다. 결성식에서는 ‘반국가 사상의 박멸을 도모하고 황도 정신(皇道精神)의 발양(發揚)에 노력하여 사상 국방(思想國防)의 완벽을 기하기를 맹세’하는 선언을 발표하였다.
조선방공협회 대구지부의 활동을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자료는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다른 지역의 활동에 비추어 대구지부의 활동을 짐작하여 볼 수 있다. 우선 지부 아래에 방공단과 방공부가 설치되었는데, 대구부(大邱府)[현 대구광역시]와 같은 도회지의 경우 지역 단위뿐만 아니라 직장 단위에도 방공단이 만들어졌다. 방공단과 방공부와 같은 조직들은 공산주의 사상에 노출되는 것을 막고 방공 의식을 전파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방공단원은 방공 방첩을 위한 훈련을 받았다.
한편 조선방공협회는 다양한 선전 활동을 전개하였다. 강연회와 좌담회, 연극 상연과 영화 상영, 사상 전람회 등 다양한 방식이 동원되었다. 방공단뿐 아니라 일반 민중도 대상으로 하였으며, 시국 상황을 전파하고 반공 사상을 선전하는 내용이었다. 조선방공협회 창립 직후 열린 사상 전람회(思想展覽會)는 서울을 시작으로 청진, 함흥, 광주, 대구, 부산, 평양으로 이어졌는데, 대구에서는 1939년 1월 11일부터 15일까지 대구상공장려관에서 열렸다. ‘스페인내란’의 참상과 적군의 포학상을 비롯하여 ‘장고봉 사건(張鼓峰事件)’ 자료를 전시하였다. 이와 동시에 대구공회당 대홀에서는 방공 방첩 영화를 상영하고, 대구극장에서는 방공 방첩 연극을 상연하였다. 대구에서는 21만 5000명이 사상 전람회를 찾았다고 한다.
한편 1938년 11월 10일 이른바 ‘제1회 방공 방첩 데이’에 조선방공협회 대구지부에서는 방공 사상을 보급하고 방첩의 중요성을 부민(府民)에게 알리기 위한 행사를 진행하였다. 먼저 대구신사에서 열린 ‘조서환발기념식(調書渙發記念式)’에 참가한 후 중앙통(中央通)을 거쳐 대구경찰서까지 시가행진을 하였는데, 이때 방공 방첩을 선전하는 전단지를 뿌렸다. 이어 대구경찰서에서 ‘팔곡공장(八谷工場) 방공단’ 결성식을 연 뒤 방공 방첩에 관한 강의와 좌담회를 열었다. 1939년 8월 15일에는 조선방공협회의 설립 1주년을 맞아 기념식과 시가행진을 하고, 8월 14일과 15일에는 대구극장에서 조선방공협회 경북연합회와 조선방공협회 대구지부가 주최하는 방공 방첩 연극 상연이 있었다.
1940년 10월 국민총력조선연맹이 결성되자 조선방공협회의 역할은 국민총력조선연맹의 문화부와 방위지도부로 흡수되었다. 대부분의 방공반 역시 애국반에 통폐합되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방공협회 대구지부는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식민지 조선에서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고 일본 정신의 고취와 일상에서의 선전 감시 체제 구축을 위하여 조직한 기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