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5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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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刷新派 |
이칭/별칭 | 쇄신회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일수 |
개항기 대구의 일본인 사회 내부에서 인두세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만든 단체.
쇄신파(刷新派)는 1905년 8월 대구 거류 일본인 사회 내부에서 대구일본거류민회에 맞서 인두세 폐지를 주장하기 위하여 만든 단체이다. 쇄신파는 대구 일본인 사회를 장악하기 위하여 1905년 8월 대구일본거류민회의 보궐선거에 오키다[冲田棄次郞], 마치타[町田久吾], 오카모토[岡本宇一], 카와이 아사오[河井朝雄] 등 4명을 추천하였으나 마치타는 입후보를 사양하였다. 대구일본거류민회에서는 오쿠라[小倉武之助], 히자쓰키[膝付益吉], 코타마[兒玉伊太郞], 토쿠라[戶倉十六] 등을 지지하였다. 선거 유권자는 3개월 이상 대구에 거주하고 인두세를 납부하는 25세 이상의 일본 남자로 제한되었다.
선거 결과 오쿠라, 토쿠라, 히자쓰키, 코타마 등 대구일본거류민회의 지원을 받은 인물들이 모두 당선되었다. 하지만 토쿠라의 사임으로 카와이 아사오가 당선되었다. 이에 인두세의 폐지 입장을 지지하는 카와이 아사오가 마침내 인두세의 폐지를 이끌었다.
쇄신파는 1905년 대구 거류 일본인 사회 내부에서 인두세 폐지를 주장하며 만들어진 단체이며, 이와세가 대구일본거류민회의 의원으로 당선된 뒤 인두세의 폐지를 이끌어 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