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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농민조합경북연맹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573
한자 全國農民組合 慶北聯盟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45년 11월 27일연표보기~28일연표보기 - 전국농민조합경북도연맹 결성식
최초 설립지 대구공회당 - 대구광역시 중구 태평로1가 지도보기
성격 농민운동 단체

[정의]

1945년 대구광역시에서 결성된 전국농민조합총연맹 소속 지부.

[설립 목적]

전국농민조합경북도연맹은 광복 후 대구에서 농민의 이익을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전국농민조합경북도연맹은 1945년 11월 27~28일 대구공회당에서 300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결성대회를 열고 출범하였다. 결성대회에 신철수, 이상훈, 서만달, 백기만, 이목, 윤장혁, 오상해, 전권, 이상기, 황태성, 곽수범 등이 참석하여 축사와 성원을 보냈다. 또 결성대회에는 조선노동조합대구협의회 산하 13개 노동조합 대표와 봉화 다덕광산 노동조합, 내성노동조합, 영주노동조합 등 경북 북부의 3개 노동조합이 참석하였다.

전국농민조합경북도연맹 결성대회에서는 향후 활동 방향과 관련하여 “활동 노선과 조직 문제, 소작료 삼칠제와 작권 이동 반대, 대중투쟁의 방침, 선전 문제, 농촌 문화 향상과 문맹 퇴치, 협동조합사업” 등이 토의되었다. 결성 당시 전국농민조합경북도연맹의 부서와 간부는 위원장 장하명, 총무부장 이상갑, 조직부장 김동환, 선전부장 신철수, 상임위원 서영로, 상무상, 조은석, 서영태, 김일식, 서혁수, 곽수범, 이상열 등이었다.

전국농민조합경북도연맹은 1945년 12월 8일부터 10일까지 열린 전국농민조합총연맹 결성대회에 정시명, 서영태, 상무상 등 세 사람의 대표와 조직부장 김동환을 참석하도록 하였다. 김동환은 전국농민조합총연맹 결성대회에서 경북 도내 1부 22개 군 중 21개 군에 농민조직과 도내 256개 면 중 222개 면에 지부를 조직하고, 도내 40만 명의 농민 중 75%인 29만 명의 조합원을 확보하여, 하부 조직 강화에 주력 중이라는 내용의 지방 상황을 보고하였다.

전국농민조합경북도연맹은 1946년 4월 21일 이승만의 대구 방문 때 대한독립촉성경북조직에서 환영의 의미로 국기 게양과 훈화 계획을 세운 것에 대하여 비판 성명을 발표하였다. 내용은 국기에 대한 모욕이며, 일개 당의 당수에게 훈화라는 어구는 잘못되었다고 비판하였다. 전국농민조합경북도연맹은 1946년 7월 9일에 「도내 200만 농민 형제에게 고함」이라는 격문을 통하여 미군정의 하곡 수집에 협력하여 기아에 허덕이는 도시 근로층과 귀환 동포를 돕자고 호소하였다. 전국농민조합경북도연맹의 상위 기관인 전국농민조합총연맹은 1947년 창립 2주년에 즈음하여 농민의 이익을 위하여 3·7제와 토지개혁 요구 투쟁, 미·소 양군 군대 철수 요구 등의 활동을 벌여 왔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하였다.

전국농민조합경북도연맹은 1945년 12월 ‘모스크바 결정안 절대 반대 결의문’에 서명하고, 조선신탁관리반대공동투쟁위원회에 참여하였다. 전국농민조합경북도연맹은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경북도위원회에 참가하고, 위원장 장하명은 상임위원이 되었다. 위원장 장하명(張河鳴)은 1947년 9월 포고령 위반으로 대구지방심리원에서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의의와 평가]

전국농민조합경북도연맹은 전국농민조합총연맹의 창립에 앞서 결성되어 경북 도내 농민조합 설립 활동과 토지개혁 같은 농민의 계급적 이익을 목적으로 활동하면서도 모스크바삼상회의 결정안, 민주주의민족전선 경북도위원회 등 정치적 쟁점에 대하여서도 좌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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