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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전국대학총학생회회장단 회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579
한자 第一會 全國大學總學生會會長團會議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80년 5월 16일연표보기 - 제1회 전국대학총학생회회장단 회의 개최
성격 학생운동

[정의]

1980년 5월 대구의 경북대학교계명대학교가 참가한 제1회 전국대학총학생회 회장단 회의.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구의 경북대학교와 계명대학교 총학생회 대표는 1980년 5월 16일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전국 55개 대학의 총학생회 대표들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된 제1회 전국대학총학생회회장단 회의에 참석하였다. 제1회 전국대학총학생회회장단 회의는 1980년 5월 14일 전국 27개 총학생회 회장단이 모여 ‘우리의 교내 시위는 끝났다’고 한 선언과 5월 14일과 5월 15일 이틀 간 대구를 비롯한 전국 주요 도시에서 가두시위가 전개된 뒤에 열렸다.

5월 16일 열린 제1회 전국대학총학생회회장단 회의는 5월 17일 오후까지 이어졌고 ‘5월 22일까지 비상계엄 해제’, ‘연내 정권 이양을 위한 정치 일정의 조속한 천명’ 등을 요구하고 이러한 요구들이 관철되지 않을 때는 행동을 취하기로 결의하였다. 제1회 전국대학총학생회회장단은 5월 17일부터 22일까지 정상수업을 받으며 정부의 조치를 기다리기로 하고 퇴각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전두환 신군부는 다음 날인 5월 18일 0시를 기하여 전국에 비상계엄 확대 조치와 함께 전국 각 대학교에 휴교령을 내렸다. 전라남도 광주에서는 전남대학교의 학생들이 휴교령에도 학교에 모여 계엄령을 규탄하는 시위를 이어갔고 시위는 유혈 사태로 번지며 5·18민주화운동이 시작되었다.

[연원 및 개최 경위]

제1회 전국대학총학생회회장단 회의(第一會全國大學總學生會會長團會議)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해 사건 이후 대학가에서는 유신체제가 무너져 민주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그러나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주축이 된 신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계엄령을 선포하며 정권을 장악하자 전국의 대학가에서는 1980년 3월 개학에 맞춰 본격적으로 신군부 규탄 시위를 벌였다. 교내 시위를 이어 가던 대학생들의 시위는 5월이 되자 가두시위로 이어졌다.

[행사 내용]

제1회 전국대학총학생회회장단 회의(第一會全國大學總學生會會長團會議)는 1980년 5월 15일에는 10만여 명 이상의 대학생과 시민이 자발적으로 모여 서울역 앞에서 계엄을 해제하고 민주화를 추진할 것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시위를 계속 이어 가자는 주장과 시위를 계속하다 군 투입의 빌미를 주면 안 된다는 시위 지도부의 의견 충돌로 일단 집회를 해산하기로 결정하였다. 다음 날인 5월 16일, 전국 55개 대학생 대표 95명은 수습 방안을 논의하기 위하여 이화여자대학교에 모였다.

1980년 5월 16일 서울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전국 55개 대학 총학생회의 이름으로 열린 회의로 향후 민주화운동의 방향을 모색할 목적으로 개최되었으며, 대구 지역의 경북대학교와 계명대학교 총학생회가 참석하였다.

전두환 신군부의 정권 장악에 맞서 개최된 제1회 전국대학총학생회회장단 회의는 향후 학생운동의 방향을 결정할 회의였으나 전두환 신군부의 비상계엄 전국 확대 선포와 1980년 5·18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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