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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대국회의원선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581
한자 第二代 國會議員選擧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50년 5월 30일연표보기 - 제2대 국회의원 선거 실시
성격 선거

[정의]

1950년 5월 30일에 대구에서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

[역사적 배경]

제2대 국회의원선거는 제헌 국회의원 2년의 임기가 종료되는 1950년 5월 10일에 치러질 예정이었으나 국내 사정과 준비 관계로 5월 30일에 실시되었다.

[경과]

제2대 국회의원선거제헌의회 선거와 달리 대부분의 정치세력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대구의 선거구 수는 제헌의회 선거와 같이 갑, 을, 병 등 3개였다. 대구는 병구 18명, 갑구 16명, 을구 7명 등 모두 41명이 출마 후보자가 경쟁하였다. 달성군은 19명이 출마하여 경쟁이 치열하였다.

대구에서 선거 분위기가 달구어질 때인 1950년 5월 24일에 이승만 대통령은 대구를 방문한 자리에서 환영 인파를 향하여 공산주의자, 반민족주의자, 반정부주의자 등에게 표를 찍지 말 것을 당부하여 반이승만 성향의 야당 및 무소속 입후보자에 불리한 양상을 조성하였다. 선거 하루 전인 1950년 5월 29일에 대구경찰서장 문인수(文仁洙)는 일부 공무원이 을구 선거구에 출마한 민주국민당 서상일 후보의 선거운동을 하다가 발각되었다고 언론에 발표하였다. 이에 서상일 후보 측은 ‘관권에 의한 조작, 관권 개입’이라며 반발하였다.

[결과]

대구의 제2대 국회의원 선거는 갑구에서 국민회의 조경규(趙瓊奎)가 8,335표를 얻어 6,512표를 얻은 민주국민당서동진(徐東辰) 후보를 누르고 당선하였다. 을구에서는 무소속의 박성하(朴性夏)가 민주국민당서상일(徐相日) 후보를 불과 46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하였다. 병구에서는 무소속의 이갑성(李甲成)이 무소속의 이우줄(李雨茁)을 누르고 당선하였다.

[의의와 평가]

대구에서 치러진 제2대 국회의원 선거는 대부분의 정치세력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선거 진행 과정에서 부정선거의 시비가 붙는 등의 사태가 벌어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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