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0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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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과대[銙帶],대금구[帶金具],요패[腰佩]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민선례 |
[정의]
대구 지역 무덤에서 출토되는 삼국시대 허리띠와 허리띠 장식.
[개설]
허리띠[과대(銙帶)·대금구(帶金具)]는 버클에 해당하는 띠고리[교구(鉸具)], 가죽 또는 비단 허리띠의 겉면을 꾸미는 띠꾸미개[과판(銙板)], 허리띠에 매달아 드리우는 드리개[요패(腰佩)], 허리띠 끝에 다는 띠끝꾸미개[대단금구(帶端金具)]로 구성되어 있다. 재질은 금, 금동, 은, 동제품이 있다. 드리개는 향낭, 약통, 물고기, 숫돌, 집게, 곡옥, 작은칼 등을 형상화한 장식물이다.
허리띠는 바지나 치마를 고정하기 위하여 착용하기보다는 사회적 지위나 신분을 나타내는 성격이 짙었다. 신라에서는 왕족들만이 금 또는 금동허리띠를 착용할 수 있었고, 귀족이나 지방의 수장(首長)들은 은허리띠를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드리개를 갖춘 허리띠는 북방 유목문화의 영향을 받아 시작되었고, 차츰 신라화되면서 매우 화려하게 만들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
달성 죽곡리 산40유적에서 출토된 은제대금구(銀製帶金具)는 띠고리 1개와 방형판(方形板)에 심엽형(心葉形) 32개·규형판(圭形板) 1개의 수식(垂飾)이 달린 띠꾸미개로 구성되었다. 띠고리는 2단이고 침은 T자형(字形)이다. 방형판은 인동문(忍冬文)을 좌우대칭이 되도록 투조(透彫)하고, 네 모서리와 변의 중앙에 모두 9개의 원두정(圓頭釘)을 박아 포대(布帶)에 고정하였다. 수식은 방형판 하단 중앙에서 이어지는 판을 수식의 연결고리에 관통시킨 후 원두정으로 연결하였다. 심엽형 수식은 상위 좌우에 엽형(葉形) 돌출부(突出部)를 만들고 가운데에는 인동문을 투조하였다. 규형판 수식은 상단에 3개의 못 구멍이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