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4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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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愼 |
영어공식명칭 | Park Shin |
이칭/별칭 | 여흠(汝欽),무진재(無盡齋),만오당(晩悟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세욱 |
[정의]
조선 전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가계]
박신(朴愼)[1529~1593]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여흠(汝欽), 호는 무진재(無盡齋) 또는 만오당(晩悟堂)이다. 아버지는 박대성(朴大成)이다. 첫 번째 부인은 별좌 민후건(閔後騫)의 딸 여흥민씨(驪興閔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참봉 손취(孫鷲)의 딸 밀양손씨(密陽孫氏)이다. 슬하에 3남 4녀를 두었는데, 둘째 아들이 국담(菊潭) 박수춘(朴壽春)이다.
[활동 사항]
박신은 1529년(중종 24)에 태어났다.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1527~1572], 월천(月川) 조목(趙穆)[1524~1606],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1540~1603] 등과 교유하였으며‚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박신은 이황이 써 준 ‘만오독지(晩悟篤志)’ 넉 자를 벽에 붙이고 아침저녁으로 수행하였다. 학행으로 여러 차례 천거되어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제수되었다. 아들 박수춘이 정유재란 이후 대구부(大丘府) 풍각현(豐角縣)[현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으로 이거하면서 대구와 관련을 맺었다.
『대구부읍지(大丘府邑誌)』에는 박신의 제영시 2수가 수록되어 있다. 한 편은 대구부의 남쪽 80리에 있었던 사미정(四美亭)에 제영한 것이고, 다른 한 편은 무진대(無盡臺)에 제영한 시이다. 무진대에 대해서 박수춘은 “남산(南山)의 동쪽에 있다. 점필재(佔畢齋)[김종직(金宗直)], 우졸(迂拙)[박한주(朴漢柱)] 두 선생이 도의로 교유한 곳이고, 선군(先君)[박신]이 중축하고 재호(齋號)로 삼았다”라고 하였다.
[학문과 저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