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441 |
---|---|
한자 | 孫潛 |
영어공식명칭 | Son Jam |
이칭/별칭 | 사용(士用)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세욱 |
출생 시기/일시 | 1602년 - 손잠 출생 |
---|---|
몰년 시기/일시 | 1658년 - 손잠 사망 |
출생지 | 황금동 -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
거주|이주지 | 황금동 -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
수학|강학지 | 영모당 -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
묘소|단소 | 손잠 묘소 -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일직(一直) |
[정의]
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가계]
손잠(孫潛)[1602~1658]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사용(士用)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현감 손치운(孫致雲)이고, 할아버지는 선무랑 손수(孫遂)이다. 아버지는 손처눌(孫處訥)이고, 어머니는 이원경(李遠慶)의 딸 광주이씨(廣州李氏)이다. 부인은 서시립(徐時立) 딸 달성서씨(達城徐氏)이다. 형은 손첨(孫添)이고, 동생은 손침(孫沈)이다. 부인 달성서씨와의 사이에 다섯 아들을 두었다.
[활동 사항]
손잠은 1602년(선조 35) 지금의 대구광역시 황금동에서 태어났다. 자세한 행적은 소실되어 전하지 않는다. 졸암(拙庵) 손단(孫湍)[1626~1713]은 “온순하고 자질은 영민하고 정치하였으며, 조화를 벗어난 이론이었다”라고 제문에서 추모하였다. 손단이 쓴 제문은 현재 전하지 않고, 1986년 손정환(孫廷煥)이 지은 묘갈명에만 인용되어 있다. 손잠은 1658년(효종 9)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손단의 제문에 따르면 손잠은 아버지 손처눌의 『주역(周易)』을 전수받았고, 특히 『주역』과 『서전(書傳)』에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