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5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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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幽影 |
영어공식명칭 | Kim Yuyeong |
이칭/별칭 | 김영득(金榮得)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성범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영화인.
[개설]
김유영(金幽影)[1908~1940]은 1908년 경상북도 선산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원래 이름은 김영득(金榮得)이다. 김유영은 영화를 기제로 현실의 불합리성을 폭로하여 진실한 프롤레타리아 의식을 가지도록 유인하였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영화사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인물이다.
[활동 사항]
김유영은 1925년 사립 보성고등보통학교[현 보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27년 임화, 강호, 윤기정 등과 함께 조선영화예술협회 연구부원으로 들어가 영화인 생활을 시작하였다.
김유영은 1928년 8월에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KARF)]에 가입하였으며, 1928년에는 조선영화예술협회에서 제작한 「유랑」을 연출하였다. 1929년에는 서울키노 제1회 작품인 「혼로」를 원작 연출로 제작하였다. 이후 1931년에는 「화륜」의 각색 및 감독을 맡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김유영은 1934년 4월에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2차 검거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고 1년 후에 집행유예로 출옥하게 된다. 김유영은 1935년 대구코레아영화제작소의 총책임자로 초빙되어 지역 영화에 공헌하였다. 1938년에 영화제를 발의하였으며, 1938년 극예술협회 영화부 제1회 작품인 「애련송」을 제작하였으며, 1939년 전발성영화 「수선화」의 감독을 맡았다.
김유영은 1940년 신장염으로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