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6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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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純鎬 |
영어공식명칭 | Park Sunho |
이칭/별칭 | 덕암(德巖),박왕호(朴汪鎬)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장세윤 |
출생 시기/일시 | 1873년 1월 8일 - 박순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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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 박순호 파리장서 서명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34년 5월 30일 - 박순호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4년 - 박순호 건국포장 추서 |
출생지 | 문양리 -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문양리 |
활동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박순호(朴純鎬)[1873~1934]는 1873년 1월 8일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문양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파리장서 운동이 전개될 때 유림 대표로 참여하였다. 호는 덕암(德巖)이며, 박왕호(朴汪鎬)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활동 사항]
박순호는 기호학파 학맥인 임재(臨齋) 서찬규(徐贊奎)[1825~1905]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3월 김창숙(金昌淑)·곽종석(郭鍾錫)·장석영(張錫英) 등의 유학자들은 조선 독립을 청원하는 장서를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하기로 하였다. 이에 여러 유학자들의 서명을 받았는데, 박순호도 대구[달성] 유림 대표로 서명하였다. 장서는 김규식(金奎植)이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하기로 하였으며, 이와 별도로 국내 각 향교에도 우송되었다. 그러나 1919년 4월 12일 성주의 송회근(宋晦根)이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는 바람에 파리장서 운동의 전말이 발각되었으며, 이 일로 박순호도 일제 당국으로부터 고초를 겪었다. 박순호는 1934년 5월 30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박순호의 공적을 기려 2004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