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6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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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華俊 |
영어공식명칭 | Park Hwajun |
이칭/별칭 | 박화식(朴華植)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장세윤 |
출생 시기/일시 | 188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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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7년 9월 - 박화준 신돌석 의병부대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1년 5월 22일 - 박화준 경성공소원에서 교수형 언도 |
몰년 시기/일시 | 1911년 6월 20일![]() |
추모 시기/일시 | 1991년![]() |
출생지 | 동문동 -
대구광역시 중구 동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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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지 | 삼척 - 강원도 삼척군 |
활동지 | 울진 - 경상북도 울진군 |
성격 | 의병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신돌석 의병 부대원 |
개항기 대구 출신의 의병.
박화준(朴華俊)[1881~1911]은 1881년경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동문동에서 태어났다. 1907년 신돌석(申乭石) 의병 부대에서 활동하였다. 박화식(朴華植)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박화준은 1907년 9월 7일 의병장 신돌석이 부대원 수백 명을 이끌고 강원도 삼척군과 울진군 원덕면 등에서 일본군과 교전을 벌인 뒤 일본인을 총살할 때 가담하였다. 또한 신대여(申大汝)와 함께 의병을 울진경찰서원에게 밀고한 울진군 원남면의 고제승(高濟昇)을 처단하였으며, 자신의 이름을 사칭하여 강도 행위를 한 최익수(崔益守)도 처단하였다. 이후 삼척군 근남면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박화준은 1911년 5월 22일 경성공소원(京城公訴院)에서 강도 및 살인 혐의로 교수형을 언도받았고, 6월 20일 형 집행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박화준의 공적을 기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