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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768
한자 安懿仲
영어공식명칭 An Eunjung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1년 5월 9일연표보기 - 안의중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8일 - 안의중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18일 - 안의중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0월형 언도
추모 시기/일시 2011년연표보기 - 안의중 건국포장 추서
출생지 유천면 - 경상북도 예천군 유천면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안의중(安懿仲)[1881~?]은 1881년 5월 9일 지금의 경상북도 예천군 유천면에서 태어났다. 대구 나병원에서 소사[잔심부름꾼]로 일하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활동 사항]

1910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난 뒤 3·1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고 이었다. 대구에서도 남성정교회[현 대구제일교회] 목사 이만집(李萬執), 남산교회 조사 김태련(金兌鍊), 신정교회 목사 정재순(鄭在淳), 천도교 대구교구장 홍주일(洪宙一), 계성학교 교감 김영서(金永瑞)를 비롯한 교사 백남채·김태식(金台植)·권의윤(權義允)·최경학(崔敬學)·최상원(崔相元), 신명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 이재인(李在寅)·임봉선(林鳳仙) 등이 중심이 되어 만세 시위를 계획하고 준비하였다.

1919년 3월 8일 이만집의 연설과 김태련의 「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서문시장에서 만세 시위가 시작되었다. 계성학교·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신명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과 일반인들이 합세하여 시위 군중은 700여 명으로 늘어났다.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서문시장을 나선 시위대는 대구경찰서와 종로를 거쳐 동성로를 향하여 행진하였고, 안의중도 시위에 동참하였다. 1,0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가 동성로에 있던 달성군청에 이르자 기관총과 착검한 소총으로 무장한 일제 군경은 시위 군중을 폭압적으로 진압하여 157명을 검거하고 그중 67명을 재판에 회부하였다. 이때 안의중도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1919년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안의중의 공적을 기려 2011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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