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8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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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起陽 |
영어공식명칭 | Lee Giyang |
이칭/별칭 | 나봉(那峯)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장세윤 |
활동 시기/일시 | 1925년 - 이기양 의열단 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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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수동 - 대구광역시 중구 수동 |
거주|이주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활동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활동지 |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의열단 단원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이기양(李起陽)[?~?]은 1888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수동에서 태어났다. 1925년 의열단에 가입한 뒤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대구로 잠입한 이종암(李鍾巖)[이명 양건호(梁健浩)]과 함께 의열투쟁을 전개하였다. 호는 나봉(那峯)이다.
[활동 사항]
1925년 9월 대구 출신의 의열단 단원 이종암은 국내에서 군자금을 모금할 계획을 세우고 신채호(申采浩)가 작성한 의열단선언서[조선혁명선언서]를 소지하고 상하이에서 대구로 잠입하였다. 의열단(義烈團)은 1919년 11월 중국 지린[吉林]에서 김원봉(金元鳳)·곽재기(郭在驥)·이종암 등이 결성한 비밀 독립운동 조직이다. 의열단은 일제 식민지 통치체제의 핵심을 이루는 일본인 고관과 친일 반민족행위자들을 처단하고 식민지 통치기관 및 선전기관, 폭압기구와 수탈기관 등을 폭파할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기양은 대구에서 농업에 종사하던 중 이종암의 권유로 의열단에 가입하였다. 이후 이종암과 함께 대구와 경상남도 밀양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 모집, 일제 식민통치기관 폭파 등을 위한 의열투쟁을 전개하였다.
이종암은 대구에서 이병호(李炳浩)의 안내로 이병태(李炳泰)를 만나 전에 부산금융조합에 예금한 돈을 받기로 하였는데, 이때 이기양은 경상북도 달성군 달서면[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노곡동에 있는 자신의 산장에 이종암을 머물게 하고 독립운동 자금 모금 등을 지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