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3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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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曺永鎭 |
영어공식명칭 | Cho Yeongjin |
분야 | 문화·교육/교육,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삼조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교육자이자 민주화운동가.
[개설]
조영진(曺永鎭)[?~?]은 지금의 경상북도 문경시 농암면 연천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교사로 근무하며 교원노조 활동을 전개하고 이대악법반대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활동 사항]
조영진은 1940년 3월 대구사범학교 심상과를 졸업한 뒤 국민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대구사범대학 국문과에 입학하여 1952년 3월 졸업하였다. 1953년 9월경부터 대구 대륜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였으며, 1960년 9월 25일 경북교원노동조합연합회 부위원장에 선출되었다.
조영진은 1961년 4월 9일 대구여자중고등학교 강당에서 개최된 전국교원노동조합대표자대회[한국교원노동자조합대표자대회]에서 경북교원노동조합연합회 위원장 신우영을 비롯한 여학룡·김장수·이목·이종석 등과 함께 반공법[반공임시특별법] 및 데모규제법을 즉시 철회하라는 요지의 결의문을 채택하고 이대악법반대투쟁을 결의하였다. 이날 전국적으로 약 600여 명의 각 지역 교원노동조합 대표와 교원이 참여하였다. 대회를 마친 뒤 참석자들은 대구여자중고등학교를 출발하여 대구역 광장을 거쳐 교원조합사무실로 시가행진을 하면서 이대악법반대투쟁을 전개하였다. 조영진은 5·16 군사 쿠데타 이후 군인들에게 체포되었고, 1961년 10월 25일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징역 10년형을 구형받았으나 11월 16일 혁명재판소에서 무죄를 언도받아 석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