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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3024
한자 崔大林
영어공식명칭 Choi Daerim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06년 8월 - 최대림 대구광학회 설립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06년 8월 - 최대림 대구 금연상채회 가입
활동 시기/일시 1908년 8월 19일 - 최대림 대한협회 대구지회 평의장 선임
활동 시기/일시 1909년 10월 28일 - 최대림 대한협회 대구지회 부회장 선임
활동 시기/일시 1910년 3월 - 최대림 대한협회 대구지회 평의원 선임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성격 민족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대한협회 대구지회 부회장

[정의]

개항기 대구 출신의 민족운동가.

[개설]

최대림(崔大林)[?~?]은 대구광학회(大邱廣學會)·금연상채회(禁煙償債會)·대한협회(大韓協會) 대구지회에서 활동하며 계몽운동과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최대림은 1906년 8월 이일우(李一雨)·윤영섭(尹瑛燮)·이종면(李宗勉)·이괘영(李快榮) 등과 함께 민지 개발과 교육 진흥을 목적으로 하는 대구광학회를 설립하였다. 대구광학회우현서루(友弦書樓)를 사무소로 활용하고, 일반인들의 자치 조직으로서 대구시의소를 운영하였다. 최대림은 1908년에는 국채보상을 위한 대구 금연상채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1월 29일 대구 광문사(廣文社) 내 문회(文會)가 특별총회를 열어 대동광문회(大東廣文會)로 명칭을 변경하고 국채보상운동을 결의하면서 시작되었다. 최대림국채보상운동이 침체되고 있던 1908년 8월 26일 금연상채회가 전 국민의 대동 결의를 주장하며 서울의 경성지원금총합소에서 전국 회의를 소집하는 공고문을 낼 때 서상돈·이현주(李玄澍)·정재학(鄭在學) 등과 함께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대구 금연상채회는 각 군의 국채보상 진행 여부에 대한 의견서와 수금 총액 및 보관처를 작성하여 전국회의에 참석할 것을 요망하였다. 하지만 대구 금연상채회가 제안한 전국회의는 국채보상지원금총합소의 평의회가 국채보상 의연금에 대한 조사에 나서면서 열리지 못하였다.

최대림은 1908년 3월 25일 특별총회를 통해 결성된 대한협회 대구지회에 참가하여 평의원에 선임되었고, 8월 19일에 열린 특별총회에서 평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1909년 10월 28일에 열린 대한협회 대구지회의 특별총회에서 부회장으로 선출되었고, 1910년 3월에 열린 대한협회 대구지회 제2회 설립기념식 및 총회에 참석하고 평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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