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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3025
한자 崔萬達
영어공식명칭 Choi Mandal
이칭/별칭 최만순(崔萬淳)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06년 - 최만달 대구사범학교 설립 발기인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06년 - 최만달 대구농공은행 설립에 대주주로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08년 - 최만달 대한협회 대구지회 가입
활동 시기/일시 1908년 - 최만달 경상농공은행 이사 취임
활동 시기/일시 1914년 - 최만달 제1기 대구부협의회 회원으로 활동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성격 관료|자본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경상북도관찰부 주사|대구어음조합 조합장

[정의]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관료 출신의 자본가.

[개설]

최만달(崔萬達)[?~?]은 대구사범학교대구농공은행 설립에 참여하였으며, 대한협회(大韓協會) 대구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최만순(崔萬淳)으로도 알려졌다.

[활동 사항]

1906년 3월 ‘흥학조칙(興學詔勅)’이 공포되고 경상도관찰사 신태휴(申泰休)가 ‘흥학훈령(興學訓令)’을 발표하면서 대구 지역의 근대 학교 설립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특히 근대 교육의 확산은 교원 양성에 있었다. 경상도관찰사 신태휴는 전현직 관료가 중심이 된 약 20명의 발기인과 함께 대구사범학교를 설립하였다. 이때 최만달김윤란·서상돈·서병돈·서상하·정재학·최성조·이일우 등과 함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1906년 일제가 대구농공은행을 설립하자 최만달은 100주를 가진 대주주로 참여하였고, 1908년 대한협회 대구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08년 진주농공은행과 합병하여 경상농공은행이 설립되었을 당시에는 이병학·김정제·정규옥·서상돈과 함께 이사로 참여하였다. 1908년 대구 지역 유력 자산가들과 대구어음조합을 조직하여 조합장을 맡았고, 1913년에는 김덕경·박병윤·이영면·서병조·이장우·서철규·정재학·이일우·정해붕 등과 지주조합을 설립하였다. 최만달은 1914년 4월부터 1916년 3월까지 제1기 대구부협의회 회원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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