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3936
한자 大院織物工業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태평로 13[달성동 145]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노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36년연표보기 - 대원직물공업 설립
이전 시기/일시 1943년 2월 - 대원직물공업 대구광역시 중구 태평로 13[달성동 145]에서 대구광역시 서구 원대동 1198로 이전
최초 설립지 대원직물공업 - 대구광역시 중구 태평로 13[달성동 145]
주소 변경 이력 대원직물공업 - 대구광역시 서구 원대동 1198 지도보기
현 소재지 대원직물공업 - 대구광역시 중구 태평로 13[달성동 145]지도보기
성격 섬유기업
설립자 최익성

[정의]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서구 원대동에 있었던 견 및 인견 생산업체.

[변천]

대원직물공업의 창립자 최익성(崔翼成)은 일본의 수탈로부터 벗어나려면 직물업을 일으켜야 한다고 믿고,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일신공업학교 섬유공학과를 1935년에 졸업하였다. 귀국 후 1936년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대원직물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당시 달성동비산동에 직물공장이 많이 생겨난 이유는 1917년 추인호가 동양염직소달성동에 설립하였고, 또한 동양모시의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서문시장뿐 아니라 서울, 부산, 더 나아가 북간도, 서간도에까지 포목상들이 활동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원직물공업 공장은 서문시장 부근에 있었으므로 경기 동향을 민첩하게 파악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사업은 크게 번창하였다. 대원직물공업은 1943년 2월 서구 원대동 1198번지로 확장 이전하면서 사업을 영위하였다. 특히 1943년 일제가 전쟁 수행에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기 위하여 추진한 기업합병 정책을 당시 대구경북견직물조합 최익성 이사장이 반대하여 큰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최익성 회장은 대원직물공업을 설립하여 섬유기계 국산화 공로로 1978년 6월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원직물공업의 주요 사업은 견 및 인견 생산이었다.

[의의와 평가]

최익성은 1969년에 경북견직공업협동조합, 1977년에 한국섬유개발연구원 등을 창립하고 1978년 9월 28일에 섬유회관을 건립하는 데 중추적인 활동을 하였다. 이에 따라 대구섬유회관 입구에는 섬유회관 건립에 지대한 공헌을 한 당시 견직물조합이사장 최익성의 흉상이 제작되어 있다. 최익성은 대구·경북 지역 섬유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