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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복음교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4676
한자 純福音敎會
영어공식명칭 Full Gospel Church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병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3년 4월 8일 - 남부교회에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설립

[정의]

대구광역시 지역 일대에서 활동하는 개신교의 한 교파로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소속의 교회

[개설]

1900년 10월 당시 감리교 부흥사이던 파함(Charles. F. Parham) 목사는 미국 캔자스주 토페카시에 벧엘성서신학교를 설립하여 40여 명의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1901년 1월 1일 새벽에 오즈맨(Agnes Ozman)이라는 여학생이 맨 먼저 방언을 하게 되었다. 이어서 다른 신학생들도 성령을 받고 방언을 하게 되었다. 전도를 시작한 결과 학생들이 세 개의 교회를 설립하게 되었고, 현대 오순절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후 캔자스주, 오클라호마주, 미주리주, 텍사스주에 ‘오순절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으며, 1906년에는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부흥 운동이 강하게 일어났다. 1906년에는 로스앤젤레스 아주사 거리에서 부흥 운동을 전개하였다. 1914년 4월 2일, 미국 20개 주에서 300명 이상의 대의원[Delegate]들이 아칸소주의 핫스프링스에 모여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한국의 순복음교회]

한국의 오순절교회는 1928년 3월 오순절 신앙을 전교하기 위하여 럼시 선교사가 내한하여 구세군 본영의 허홍을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1932년 4월 럼시 선교사와 허홍을 중심으로 서빙고교회를 창립하였으며, 1933년 5월 조선오순절교회가 창립되었다. 1939년 10월 일제에 의하여 럼시, 벳시, 메르테드 선교사가 강제 출국을 당하고, 1942년 일제의 종교탄압으로 조선오순절교회는 해산되었다. 1949년 대한오순절교회가 재건되었고, 1953년 4월 8일, 남부교회에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를 창립하였다. 1953년 5월 순복음신학교가 개교하였으며, 1957년 세계적인 부흥사 허만 목사가 중앙청 앞 광장에서 24일간 전도 집회를 인도하였다. 1957년 11월 허홍 목사를 중심으로 대한오순절교회가 분열되었다가, 1972년 10월 분리된 대한오순절교회가 통합되었다. 1973년 8월 세계오순절대회[P.W.C.] 제10차 대회가 세계 39개국 1,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여의도순복음교회와 효창운동장에서 열렸다. 1981년 12월 서대문측과 반포측으로 교단이 분열되었다. 1985년 1월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예수교대한하나님의성회’를 설립함으로써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반포 측이 와해되었다. 1988년 9월 오순절 세계대회를 개최하고, 1991년 12월 올림픽주경기장에서 교단 통합 선언 대회 및 감사 예배를 거행하였다.

[대구 지역의 순복음교회]

대구광역시의 순복음교회는 1981년 5월 3일 제2순복음대구교회[현, 순복음대구교회]가 창립되면서 시작되었다. 1985년 ‘대구광역시 복음화 대성회’를 시작으로 성시화 운동이 전개되었으며, 대구 지역에서 순복음교회가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순복음엘림교회, 순복음목양교회, 순복음창조교회, 순복음화원교회, 순복음행복한교회, 온누리사랑교회, 순복음승리교회, 여의도순복음동대구교회, 순복음신동산교회, 순복음열린교회, 순복음화원동산교회, 말씀들교회, 여의도(순)대구중앙교회, 순복음방주교회, 순복음시온교회, 순복음새소망교회, 섬기는교회 등이 설립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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